내가 살고 있는 하동은 전국의 어떤 지역보다 고양이가 많은 곳이다. 집마다 고양이 밥그릇이 있고, 차가 다니는 길거리에 고양이들이 누워 있는 풍경도 흔하다. 할머니들이 모이면, 며느리 흉보다가 손주 자랑하다가 종국에는 올봄에 자기네 헛간에서 새끼들을 낳은 고양이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 당연할 정도이다. 아무래도 80만 평에 달하는 넓은 평사리 들판에서 쌀이 생산되고, 그것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쥐가 들끓으니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고양이를 우대하는 풍습이 생겼나 싶다.
지금은 우리 집 강아지가 고양이를 싫어하여 못하고 있지만, 처음에 집을 지을 때 정원 구석에 고양이 급식소를 따로 지어 사료를 준 적이 있었다. 예쁜 고양이가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았고, 나는 그 한 마리 한 마리를 구별하여 이름을 지어 주었다. 가끔 들르는 수컷 고양이들에게도 이름을 붙였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들을 모두 구별하는 것보다는 쉬웠다.
비슷하게 노랑 노랑하고 검정과 흰색뿐인 고양이들을 구별하여 이름을 외우자, 뜻밖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들의 변화 하나하나를 감지하게 되었고, 집에서 키우면 15년도 사는 고양이들이 야생 상태에서는 2~3년 만에 죽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 이유를 알 수 없이 급식소 옆에서 죽어 버린 고양이도 있었고, 상처가 가득한 채로 나날이 죽음으로 다가가는 수고양이들도 보았다. 통조림을 좀 마련해서 수고양이에게 먹이려고 하면 어디선가 그의 자손들일 새끼 고양이와 어미 고양이가 달려들고 수고양이는 비켜나 그 먹이를 양보했다. ‘너희가 사람보다 낫구나’ 싶을 때도 많았다. 장맛비 쏟아지는 날 첫 배로 새끼를 낳은 고양이가 오길래, 통조림을 주었더니 입안 가득 물고 빗속을 뛰어가는 것도 보았다. 그 장대비에 통조림의 고기가 떨어져 나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새끼들과 내 급식소를 왕복하는 것이었다.
사람들과 떨어져 살던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불렀고 그들은 나를 의식하고 응답했다. 참으로 야생과 하나 되는 기쁨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초입이 되자 얼마 전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까지 내리는 날이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리산에 흔하지 않은 눈이 와도 기쁘지 않았다. 고양이들 걱정, 그리고 비바람 몰아치는 엉성한 집에서 일 미터 남짓한 줄에 묶여 평생을 뛰어보지 못한 가여운 강아지들 때문에 그랬다.
새로 나타난 고양이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고 그 고양이가 더 이상 오지 않으면 죽었는지 짐작했고, 나는 더 이상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였다. 이 가슴 아픔은 뜻밖에도 내게 불신앙까지 불러들이는 듯싶었다. ‘대체 저 피조물들을 저렇게 지어만 놓으시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놓아두시면 저들은 괴로워하며 죽기밖에 더 합니까?’ 하며 눈물이 나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곳을 마련해주신 데 대한 감사로 넘쳐나던 아침은 불평으로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여기서 빠져나오는 데는 한 참이 걸렸다. 어느 순간, ‘네가 이 모든 것들의 하느님이 될 작정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는 것, 그분이 이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심을 아는 것, 이걸 잊어버렸던 것이다. ‘내가 길고양이들을 사랑하는데 당연히 나는 옳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던 것이다. 그 옛날 공장으로 위장 취업을 떠나며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일하러 가는 길이니, 미사는 좀 빠져도 되죠? 하는 생각이 18년의 냉담을 불러왔듯이 말이다.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창세 2,20)를 읽으며 든 생각이었다. ‘사람이 이름을 붙여주었으니, 아담은 그들을 사랑했으리라' 나는 짐작한다. 잡아먹고 괴롭히고 이용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