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느님 공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최용택
입력일 2025-01-24 14:29:55 수정일 2025-02-03 11:31:08 발행일 2025-02-09 제 342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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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이 문장은 스웨덴의 다국적 기업 임원이었던 젊은 저자 린데블라드가 모든 것을 버리고 태국 숲속의 사원에 들어갔을 때 겪은 일을 회고한 책의 제목이다. 린데블라드는 현자로 알려진 스승의 말씀을 듣는다. “여러분이 삶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하면 모든 일이 풀릴 것입니다. 첫째,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기막힌 사건들이 가끔 있는데 그중 압권은 1961년 영국에서 일어났던 A6 도로 살인사건일 것이다. 데이트하던 남녀 중 남자는 살해되고 여자는 강간당한 후 총에 맞았다. 7발이나 맞은 여자 발레리는 하반신과 상반신 일부가 마비된 채로 살아나 범인을 지목한다. 제임스 헨레티. 그는 전과가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고 범행을 부인한다. 검찰에는 강력한 증거가 없는 상황. 그러나 배심원단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헨레티는 감옥에서도 끈질기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수많은 언론들이 그의 죄 유무를 두고 이 전쟁에 참여했고 인권활동가들이 여기에 가세해 헨레티를 응원한다,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 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수많은 정황 증거들이 속속 보도된다. 아직 과학수사가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 경찰의 부실한 수사도 도마에 올랐다. 

영국 사회는 그로 인해 둘로 나누어 연일 공방을 계속했다. 피해자 여성인 발레리는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 불륜녀(둘은 부적절한 관계였다)로 비난받는다. 그녀는 하반신이 여전히 마비된 채 거의 외출도 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었다. 얼마 후 영국 법무부는 헨레티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다. 형 집행 전날 가족 면회에서 그는 가족에게 마지막 말을 전한다. “내 소원은 단 하나 내가 죽고 나서라도 나의 무죄가 밝혀지는 것.”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더욱 분노했으며. 피해 여성 발레리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인권활동가와 가족의 끈질긴 요구로 영국 법원은 40년 후인 2001년 드디어 보관되어 있던 강간범의 DNA를 다시 검사할 것을 명령한다. 검사 결과, 발레리에게 나온 정액은 헨레티의 것이라고 확정된다. 잘못될 확률은 1900만분의 일. 우리의 예상대로 이 결과에 승복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바라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설마 사람이 죽기 직전에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나도 이 사건을 보고 알게 되었다. 사람은 죽기 직전에도 시치미를 떼며 거짓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지식인들이 나서서 아니라고 하면 그 사실은 아닌 것이 될까. 20세기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할 때 ‘순수한’ 서구의 지식인들이 부르던 공산주의 찬양가는 한 번도 정식으로 사과된 적이 없다, 미국의 지원을 받던 남미에서 독재에 학살당한 사람들에 대해 침묵하던 모든 지식인들의 사과도 들은 적이 없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리라. 완전한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시라는 것을 잊지 않는 일이리라. 이 혼란한 시대, 나는 한 가지 책만을 읽고, 한 종류의 방송만을 듣고 내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외침이 두렵다. 다시 돌아봐도 과거 내 자신의 모습이 새삼 두렵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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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