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님과 함께 그리스 성지를 순례할 때였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파트라이 지역에 가까워지자, 옆에 앉은 염 추기경님은 많이 상기한 듯 보였고 눈가엔 이슬이 살짝 비쳤다.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아 사도는 파트라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 도시에 들어서자, 곳곳에 많은 X자 모양의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안드레아 사도가 스승과 같은 십자가에 못 박힐 자격이 없다고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묶여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X자 모양의 십자가는 ‘성 안드레아 십자가’로 알려져 있다.
염 추기경님은 어두운 성당에 무릎을 꿇고 한참 동안 말없이 기도하셨다. 밖에 나오면서 평소에는 감정을 잘 안 드러내는 염 추기경은 눈가가 촉촉해져 “여기를 평생에 꼭 한번 오고 싶었어. 이제야 오게 된 것이 참 미안하고 감사해”하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본래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다가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 때 아카이아 지역의 파트라이로 옮겨졌다. 그 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이 1461년 로마로 망명하면서 안드레아의 유해 중 머리를 로마에 가져왔다. 비오 2세 교황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드레아의 머리를 봉안했다. 그런데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정교회와의 공존과 화해를 위해 다시 그리스 파트라이로 반환했다. 안드레아는 순교 이후에도 유해가 여러 곳에 옮겨 다니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안드레아 사도는 형제인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의 첫 제자이다. 안드레아는 어떻게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고 고백했을까? 안드레아는 본래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 예수님은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받으셨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라고 증언하였다.(요한 1,29-33 참조) 다음날 세례자 요한이 두 제자와 함께 있다가 예수님이 보이자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하자 두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갔다. 다음날 안드레아는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가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하며 형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갔다.(요한 1,35-42 참조)
안드레아는 형 베드로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이었고 뒤에서 보조자의 역할, 대중과 주님, 이방인과 주님, 제자들과 주님을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잘 실행했다. 안드레아는 5000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예수님에게 한 어린이가 가져온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져와 기적의 발판을 마련했고(요한 6,8), 그리스 출신의 이방인들에게 다가가 스승을 방문하도록 조치했다.(요한 12,22) 제자들을 대표해 안드레아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함께 따로 예수님이 챙기는 사도단에서도 신임이 높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언제나 사도단에서 겸손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던 인물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