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함께 밥 먹고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는 식구입니다”

박주현
입력일 2025-03-12 08:47:52 수정일 2025-03-12 08:47:52 발행일 2025-03-16 제 3433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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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르포] 여성 노인공동생활가정 ‘모니카의 집’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운영…소규모 인원으로 가정집에서 생활
건강 관리 비롯 심리적 지원도…정부 지원 없어 도움 손길 절실

예수님의 수난은 육신의 아픔뿐 아니라 철저히 ‘홀로’ 버려진 아픔이기도 했다. 사순 시기를 보내는 우리는 “나는 버림받은 인간이구나”라는 아픔을 간직한 무의탁 홀몸노인들에게서, 같은 아픔에 몸부림치던 그분을 뵐 수 있지 않을까. 가족에게 헌신했으나 늙어 병들자 버려진 노인, 자녀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스스로 버려짐을 택한 노인, 홀로 평생을 지내왔으나 늙어서까지 혼자 죽게 된 노인…. 모양만 다른 슬픔에 멍든 예수님들이 그들 안에 계신다.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가 운영하는 여성 노인공동생활가정 ‘모니카의 집’(시설장 박미희 클라우디아 수녀)은 그런 버림받은 예수님과 ‘한 식구’가 돼 위로하고 있었다. 고립된 이들과 함께 살며 건강과 노후를 돌봐주는 현장에서, 우리가 진정 닦아 드려야 하는 예수님의 눈물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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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서울 구의동 모니카의 집 경당에서 입소 노인들이 함께 낮기도를 바치고 있다. 박주현 기자

■ “언제나 함께하는 우리는 한 식구랍니다!”

“생명의 길 밝혀 주시니 주님을 따르리, 십자가 길로…. 주님을 현양하리, 사랑의 길로….”(「가톨릭 성가」 19번 <주를 따르리>)

3월 5일 서울대교구 구의동성당 옆 주택가에 자리한 ‘모니카의 집’. 3층짜리 붉은 벽돌집에 울려 퍼지는 할머니 7명의 성가 합창은 노곤해진 늦은 아침에 상쾌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점심 전 경당에서 다 같이 바치는 낮기도 때였다.

“어서 점심들 드셔요~. 두부 탕수가 아주 맛나게 됐답니다!”

경당에서 몇 걸음 지나 트인 식당에는 시설장 박미희 수녀와 조리사의 솜씨로 요리된 점심상이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었다. 고기반찬을 낼 수 없는 재의 수요일인 이날 메인 메뉴는 두부 탕수. 하나하나 전분을 묻혀 한 소쿠리나 튀겨낸 두부튀김에 딸기와 파프리카를 아낌없이 넣어 조린 새콤달콤한 탕수 소스가 곁들여졌다. 노년층에게 친숙한 밑반찬 울외 장아찌, 멸치 다시로 맛 낸 간장 무조림, 푹 익어 술술 넘어가는 아욱된장국, 우엉조림, 후식으로 청포도와 단감…. 평범한 가정의 집밥 이상으로 푸짐한 상차림이었다.

“꼭 붙잡아요, 언니. 내가 의자에 앉혀 드릴게.”

따뜻한 밥상을 앞에 두고도 할머니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부터 챙겼다. 척추가 불편해 혼자 걷지 못하는 지연(가명·루치아·88) 할머니를 유 루치아(85) 할머니가 부축해 식당까지 모셨다. 성 엘리사벳(82) 할머니는 지연 할머니가 체하지 않도록 따뜻한 물을 컵에 담아 가져다줬다. 시설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살고 있는 두 수녀도 일사불란하게 밥과 반찬, 국을 고루 담아 가져왔다. 지연 할머니의 양말을 신겨주는 할머니도 있을 만큼, 한 가족 같은 단합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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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서울 구의동 모니카의 집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입소 노인들이 사무국장 이비아 수녀를 따라 치매 예방 체조인 ‘건강 박수’를 하고 있다. 박주현 기자

“우리는 한 식구니까요.”

박 수녀는 “모니카의 집은 할머니들과 우리 수녀들이 서로 유대하며 공동 생활하는 노인공동생활가정”이라고 말했다. 노인공동생활가정은 요양원(노인요양시설)과 달리 입소 정원이 5명 이상 9인 이하로 일반 가정집 같은 주거 환경과 분위기에서 노인들이 함께 노후를 보내는 곳이다.

특히 모니카의 집은 구성원들이 개인 영역을 존중받고 독립된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관계 맺고 지낼 수 있도록 돕는다. 할머니들은 1인 1실 개인 생활 공간에 살면서도 낮과 저녁 두 차례 경당에 같이 모여 기도하고, 함께 식사하고, 친구가 돼 대화를 나눈다. 고민거리가 있으면 수녀들이 개인 면담을 해준다. 각자의 아픈 사연이 그들 사이에 소문을 타지 않게 하는 세심함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존중하되 한 식구처럼 지냄으로써 할머니들은 파편화하지 않는다. 1998년 당시 구의동본당 주임신부였던 고(故) 김병도(프란치스코) 몬시뇰이 시작한 초기 공동체 모습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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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서울 구의동 모니카의 집 식당에서 시설장 박미희 수녀(왼쪽)와 사무국장 이비아 수녀가 혼자 거동할 수 없는 입소 노인에게 점심 식사를 가져다주고 있다. 박주현 기자

■ 기워 드릴게요, 그대의 헤진 날개를

모니카의 집에는 버림받았거나, 스스로 떠나왔거나, 일생 혼자였기에 갈 곳 없는 할머니들이 지낸다. 모니카의 집 수녀들은 할머니들의 그 아픔에 공감하며 한 가족이 되어 보살핀다.

할머니들은 수녀를 따라 매일 치매 예방 체조 ‘건강 박수’를 하고, 다 같이 성지순례 등을 떠나는 가족 나들이(1년 6차례)를 가거나 외식(1년 12차례)을 하고, 달마다 건강 검진을 받고, 각자 언제든 자유롭게 인근 어린이대공원 산책을 즐긴다. 옛 물건들을 보며 회상·기억의 놀이를 하는 치매 예방 테라피(치료법)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침울하기만 했던 할머니들이 여기서는 서로 “기도 시간이야, 언니!”하고 말을 건네며 많이 밝아진다.

그러나 버림받음이란, 해방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아무는 상처가 아니다. 영육이 강건한 이에게조차 일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흉터를 남기기 때문이다. 하물며 스스로 돌볼 수 없는 노인들에게는 얼마나 큰 비극이 되어 가슴을 찌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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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의동 모니카의 집 전경. 박주현 기자

제주 4·3 사건으로 조카들 외 모든 가족을 잃은 한 과거 입소자는 자식같이 키웠던 조카 중 하나에게 폭력을 당하고 집까지 빼앗겨 이곳에 오게 됐다. 그는 수녀들의 극진한 보살핌 덕에 금방 미소를 되찾았으나 늘 말수가 적고 기운이 없었다. 수녀들도 기억할 만큼 욕심이 없고 무엇이든 식구들과 나누던 고운 심성은 아픔에서 쉬이 헤어 나오지 못했다. 시설을 떠나기 전 식구들에게 사랑 표현으로 식사비까지 남겨 놓고 떠날 만큼 여리고 선한 마음씨를 가졌다.

사실혼 관계였던 남편, 배다른 자식들에게 누명까지 쓰고 쫓겨난 다른 과거 입소자는 벽에 머리를 박는 등 종종 자해했었다.

누구나 관계 맺고 살아가는 인생, 무의탁 홀몸노인들도 한때 누군가에게는 수호천사 같은 존재였다. 모니카의 집 수녀들은 그런 노인들의 헤진 날개를 기워주기 위해서라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시설 이름이 유래한 여성과 어머니의 수호성인 모니카(332~387)의 정신을 따라서다. 부양의무자 유무 등 법적 가족관계 문제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에서 제외된 한 과거 입소자를 위해서는 그를 버린 자식들을 직접 찾아다니는 등 발 벗고 나서 수급 권리를 되찾아줬다.

“수녀님들께서 너무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셔요. 너무 미안하고 감사하고,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네요. 저 사실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지도 몰라 숨고만 싶은데 용기 내서 말하는 거예요. 그만큼 저를 인간으로 대해 주시는 수녀님들 진심을 말하지 않아도 느끼니까요.”

거동도 어려워 수녀들이 목욕시켜 주는 지연 할머니는 “궂은일까지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수녀님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하느님의 사랑하는 딸’임을 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랑받는 나는 내일도 웃으며 일어나 기도하고, 동생(식구)들을 사랑하고 따뜻한 담소를 나누고, 기쁘게 잠자리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 없이 후원금과 입소자 생활비로만 운영되는 모니카의 집은 개인실 보일러 교체, 장마철에 비가 새지 않도록 외벽 보수 작업 등 성원을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물품 후원도 받는다.

※ 후원 계좌: 농협 170341-51-013048 예금주: 모니카의집
※ 문의: 02-455-3593 모니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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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모니카의 집 입소 노인들을 위해 수녀들과 조리사가 함께 준비한 칠순·팔순·구순 잔치에서 입소 노인들과 수녀들, 조리사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모니카의 집 제공

 

박주현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