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느님 공부

우도를 기림

이주연
입력일 2025-03-12 08:48:22 수정일 2025-03-12 08:53:18 발행일 2025-03-16 제 343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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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서울을 떠나 남쪽에 내려와 산 지도 벌써 7년이 되어간다.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내가 23년째 해 오고 있는 서울 구치소를 방문하는 일이다. 아침(?) 두 시 반에 일어나 전날 준비해 놓은 5~6인분의 도시락을 싸고 5시쯤 길을 나선다. 9시 반쯤 서울 구치소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고 안으로 들어가면 한 달에 한 번 있는 나의 봉사가 시작된다. 그사이 부쩍 노쇠해진 내 몸은 오래전부터 ‘이건 무리야’라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기도를 시작했다. ‘서울 말고 이곳에서 다른 봉사로 당신을 돕고 싶다’고. ‘이건 모른척하지 마시고 꼭 응답을 주셔야 한다’고. 힘겹게 두 시 반에 일어나 서울로 갈 채비를 차리면서 내 마음은 몇 번이나 이별의 말들을 준비하고 있었고, 실제로 지난 몇 달 동안 몇 번 말을 꺼냈기도 했다. 신부님도 난감해하셨다. 교육받은 봉사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도 오늘은 이 말을 꺼내리라 맘먹고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나와 만나게 되는 한 사형수가 – 봉사자는 네 팀으로 돌아가고 사형수들은 현재 다섯 명이기에 우리는 몇 달씩 못 만나기도 한다 - 미사에 나왔다. 그는 얼굴이 몰라보게 환했다. 복음이 낭독되고 나눔을 하는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지난번 마리아 자매님께 약속드린 대로 하루에 묵주기도를 최소 75단씩 했어요. 많이 하는 날은 120단까지 했어요. 몇 단 했는지 잊어버릴까 봐 바둑돌을 얻어다 작은 종지에 옮겨가며 했어요.”

‘나 이번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만 오려고 해요’라고, 말하려던 나의 입술은 멈추어졌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지난여름 더위와 절망에 지친 그에게 내가 위로를 건넸었다. “예수님 오른쪽에 있었던 죄수를 생각해 봐요. 그의 죄가 형제님보다 가볍지는 않았겠지요. 그도 사형수였으니까요. 그러나 그가 회개하자 예수님은 단 한마디도 묻지 않으시고 인류 최초로 천국 문 티켓의 구매 확정을 해주셨어요.” 

그 무렵 나는 하루에 묵주기도 100단을 하고 있었는데 나눔 중에 그 말을 듣던 그가 머뭇거리더니 자신은 5단도 겨우 한다면서 100단은 안 된다고 하기에, ‘그럼 50단은요?’ ‘조금만 더 하자, 60단은요?’ 뭐 이러다가 어찌 된 일인지 75라는 숫자에서 흥정(?)이 멈추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이 조용하지 않은, 이 분노와 소음으로 가득 찬 곳에서 그걸 해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목이 콱 메어왔고 눈물이 고였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 꼭 매달 오기가 힘들면 그냥 쉬어가면서 그래도 … 계속하면 안 되겠니?” 대체 나의 하느님은 왜 이렇게 눈물 그렁한 목소리로 속삭이시는지, 나는 가끔 의아하곤 했다. 많이 받은 내가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 퉁명하게 명령하셔도 나는 순종해야 할 것 아닌가. 

감동을 받는 것은 받는 것이고 왕복 10시간을 운전하는 나의 몸은 파김치가 되어가는데, 집으로 돌아오자 요즘 몇 달 만나지 못한 다른 사형수에게 편지가 와 있었다. “마리아 자매님 잘 지내시죠. 시골에서 올라오시는 거 많이 힘들어하신다는 말을 신부님께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기도했어요. … 그래도 … ‘꼭 매달 오기가 힘들면 그냥 쉬어가면서 그래도 … 계속하면 안 되겠나요?’ 하고….” 온몸으로 소름이 후루룩 돋았다. 이 말은 내가 돌아오며 하느님께 받은 마음속의 응답 그대로가 아닌가. 하느님은 다른 사형수가 보낸 편지의 말들을 내게 먼저 전해 주셨다. 맙소사.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게는 요나처럼 도망칠 고래 배 속도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열어젖히시는 희년의 문중에서 ‘갇힌 자들을 위한 문’이 활짝 열리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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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