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느님 공부

누가 길을 아는가

이주연
입력일 2025-02-26 08:59:20 수정일 2025-02-26 08:59:20 발행일 2025-03-02 제 343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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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영화 <이집트 왕자 2>(Joseph King of Dreams)에는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압니다>(You know better than I)라는 요셉의 노래가 나온다. 처음, 이 노래를 듣고 엄청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가끔 힘들 때 이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아직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 안에 있는 교만들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이 지하 감옥에서 부른 노래이며, 그의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그중 하나는 복직되고 하나는 처형 되었으나 복직된 이는 요셉을 잊었다. 아마도 푸르른 청춘이었을 요셉은 이제 자신의 젊은 시절은 물론 평생을 지하 감옥에서 썩어갈 신세가 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제 내게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고 생각했으리라. 어쩌다 자신이 이리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으리라. 지하 감옥, 잊혀짐 그리고 홀로 죽어감…. 그때 이 노래가 나온다.

“나는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가장 확실한 길을 선택했다고 믿었는데 그 길이 날 여기 데려다 놓았어요.”

나더러 번역하라면 아마도 “네가 생각한 대로 산 결과가 딱 이 꼴이야!” 이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를 더 아프게 했던 구절들이 흘러나온다. “나는 저항했죠. 이것이 시험이라면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모든 걸 포기했을 때 진실이 확연해졌어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을 아는 게, 이걸 헤쳐 나가는 길이겠지요.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놓아버렸어요. 왜냐고 묻는 그 마음을요.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아니까요.”

한때 이 세상과 내 인생에 대해 ‘왜죠? 왜죠?’ 하고 물었던 때가 생각났다. 대체 ‘왜 나입니까?’ 하고도 물었고,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내게 이러시는 건가요?’ 하고 물었던 것도 기억났다. 밤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소주병과 잔을 두 개 가져다 하나는 십자가 아래 놓고 하나는 내가 마시며 –두 잔 다 내가 마셨다- 원망과 주정을 하던 때도 있었다. (이건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아직도 권한다. 괜히 친구 괴롭히지 말고, 집에서 검약하게 이런 방법을 쓰라고.) 그때 가장 많이 물었던 단어가 ‘왜?’였던 것 같다.

오래도록 “당신이 어떻게 내게 그러실 수 있어요?” 하고 외쳤는데, 하도 오래 외치다 보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내 주정이 “당신이 어떻게 내게…. 뭐 그러실 수도 있겠네요” 하고 바뀌는 날이 있었다. 기적 같은 변화였다. 팽팽하던 분노와 긴장이 일순간에 풀어져 내렸고 엷은 해방감 같은 것이 찾아왔다. 그리고 깨달음들이 왔었다. ‘날이 왜 이렇게 추워?’라든가 ‘웬 비가 이리 많이 내려?’라든가, ‘왜 이렇게 비가 오지 않는 거야?’라든가 하는 말이 얼마나 교만한 말인지 알게 된 것이다. 가끔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하면 나는 농담처럼 묻곤 했다. “네가 몸소 날씨 플랜을 하늘에 제출하고 왔어?”

나는 아직도 기도한다. “요래 요래 해 주시고요, 조래 조래 마시고요, 쟤는 좀 혼내주시고요. 쟤에게는 돈을 좀 주시면 좋겠어요!” 뭐 이렇게…. 이런 기도가 전혀 잘못은 아니겠지만, 그 후에 덧붙이는 것을 잊곤 한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가장 중요한 말이다.

“하늘에 한 조각 구름이 떠 있었는데 나는 그게 하늘인 줄 알았어요.” 노래의 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전히 그것이 내 이야기인가 싶다. 그래서 다시 기도한다. “하느님 뜻대로 하시고 제게는 그것을 받아들일 은총을 주십시오. 어느 게 더 좋은지 저보다 잘 아시는 분이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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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