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느님 공부

메일린의 기적

최용택
입력일 2025-03-05 09:06:43 수정일 2025-03-05 09:06:43 발행일 2025-03-09 제 343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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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날 나는 알았다.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사랑이시며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우주와 이 세상, 내 몸과 주변이 모두 사랑으로 운행되고 있음을 믿는다는 것을. 엄마가 아픈 예방주사 바늘을 들이대도 원망하지 않는 아이처럼, 그토록 좋아하는 사탕을 하나만 주어도 원망하지 않는 아이처럼, 상처에 더 아픈 소독약을 붓는 사랑으로 이해하는 아이처럼 말이다. 

그러니 믿음이란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하느님이 그것을 보고 계시며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이렇게 쉽고도 어려운 일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을.

3살 아기 메일린은 집안의 작은 파티장에서 혼자 소시지를 먹다가 질식해 뇌사상태에 빠진다. 책과 다큐로 나온 <메일린의 기적>은 교황청이 가장 최근에 공식 인정한 그녀와 가족이 함께한 기적의 보고서들이다.

다른 장기들과는 달리 뇌는 3분 이상 산소공급이 중지되면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뇌사는 의학적으로 이미 사망한 상태이므로 의료진은 수일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부모에게 산소와 영양공급을 중단할 것을 권한다. 그때 메일린의 부모는 묻는다. “애가 배고파서 죽는 거 아닙니까?” 

이 구절은 의료진과 독자인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부모는 고집스레 메일린을 지킨다. 이때 메일린의 아버지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예수로 추정되는 빛을 보고 뚜렷하게 “내가 그 아이를 살릴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그는 신자가 아니었다. 메일린의 외조부모가 가톨릭신자였을 뿐이었다.

부모는 메일린을 극진하게 돌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자이든 아니든 기도도 시작된다. 소식을 들은 프랑스 리옹의 사람들은 가경자 폴린 자리코에게 전구를 청하며 9일 기도를 시작한다. 의사들이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메일린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후일 인터뷰에서 메일린의 아버지는 말한다. “꼭 기적을 바란 건 아니었어요, ‘낫게 해 주시면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당신이 데려가시면 그녀를 더 사랑해 주시겠지요’ 하고 기도했어요.” 그리고 또 그는 말한다. “처음에 기도할 때 너무나 외로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수억 명이 나와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했어요. 너무나 놀라웠지요.”

과거의 어떤 날에 나는 꼬박 보름을 거의 못 자고 내 아이를 위해 기도한 일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때 나는 외쳤었다.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기도해도 안 들어주실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네가 하는 행위는 어쩌면 기도가 아닌지도 몰라 그건 그냥 집착일지도 몰라.

메일린의 부모는 집착하지 않았다. 신자가 아니어도 기도했다. “혹시 데려가시면 당신이 그 애를 더 사랑해 주시겠지요” 하고.

우리 지구는 시속 1670km로 돌고 있다. 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14분 만에 갈 수 있는 속도이다. 또 우리 지구는 그렇게 뺑뺑 돌면서 초속 29.8Km로 태양을 돌고 있다. 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14초 만에 갈 수 있는 속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지럽지도 않고 비틀거리지도 않는다. 

지으시고 나서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은 이미 그 자체로 기적이다. 그런데 하느님과 착한 부모 그리고 이웃의 사랑은 그 기적마저 비집고 다시금 기적을 만들어 냈다. 아름다운 메일린과 그 가족 그리고 이웃들을 위해 기도한다. 아프시다는 우리 교황님을 위해서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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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