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특집] 성 요셉의 ‘칠고칠락(七苦七樂)’을 아십니까

이주연
입력일 2025-03-19 09:18:20 수정일 2025-03-19 09:18:20 발행일 2025-03-23 제 3434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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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정의 가장이자 아기 예수 보호자로 하느님 구원 계획 협력하며 순종
일곱가지 기쁨·슬픔 묵상은 요셉 성인이 걸은 영적인 길 따르는 결심

성 요셉은 성경에서 예수의 탄생기와 성장기에만 나타날 뿐 공생활이 시작된 후에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마태오복음서와 루카복음서에 관련 일화들이 소개돼 있지만, 마르코복음서와 요한복음서에서는 거의 행적을 찾을 수 없다. 「야고보의 원복음서」나 「토마스복음서」 같은 외경에서 그의 삶을 참조할 수 있다.
성 요셉의 일생은 담담하다. 묵묵히 성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하느님 구원 계획에 협력하며 순종했다. 또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의 뒤에서 필요한 보호자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일생의 행간에서 우리는 성인이 지녔을 기쁨과 슬픔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칠고칠락’(七苦七樂)은 잘 알려져 있으나, 상대적으로 성 요셉의 ‘칠고칠락’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성 요셉 성월을 지내며 성인이 예수의 양부로서 감당했던 일곱 가지 고통 및 일곱 가지 기쁨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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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롱 <이집트로의 피신>, 1883년, 런던 로렌스 갤러리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

성 요셉에 대한 공경

성 요셉의 칠고칠락을 살펴보기에 앞서 성 요셉을 향한 공경과 신심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면, 성모 마리아가 초대 교회 때부터 특별히 기도의 대상이 됐던 것과 달리 요셉을 공경하는 모습은 비교적 늦게 생겨났다. 「가톨릭대사전」은 이에 대해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의 아버지라는 요셉의 독보적인 위치가 마리아의 동정과 예수의 기적적인 탄생에 관한 교리에 오해를 빚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다. 그러다가 외경 등의 영향으로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할 때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 여겨졌고, 요셉이 예수의 양부로 선택됐음을 나타내기 위해 사제 아론 경우처럼 요셉의 지팡이에 싹이 났다는 일화도 생겼다. 이런 이유를 배경으로 요셉 공경에 대한 최초의 흔적은 4세기 초 동방 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또 800~900년대 콥트 교회 달력 7월 20일 자에 나타난다.

3월 19일이 성 요셉 축일로 자리 잡은 것은 12세기 무렵이다. 예루살렘 성지를 이슬람에게서 탈환하려는 십자군은 성 요셉을 공경하고자 나자렛에 교회를 세웠다. 그 뒤로 성인에 대한 공경과 축제는 주로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의 노력으로 유지되고 전파되었다. 1479년 프란치스코회 회원이었던 식스토 4세 교황은 요셉 축일을 모든 교회로 확산시켰고, 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요셉을 ‘거룩한 교회의 수호자’로 선언했다. 한편 1955년에 비오 12세 교황은 해마다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지내도록 선포했다.

우리나라는 교회 설정 초기 조선대목구가 속한 북경교구의 수호성인인 요셉을 조선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모셔 오다가, 1838년 성 앵베르 주교의 요청으로 요셉과 함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모셔 왔다. 그 뒤 주교회의 2015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오직 한 수호자만 모셔야 한다는 교황청 경신성사부의 의견에 따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만을 한국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정했다.

미사 경본의 고유 감사송은 1920년 처음 도입됐고, 성 요한 23세 교황은 1962년 요셉의 이름을 미사의 감사 기도문에 수록시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편 교회의 수호자 성 요셉’ 선포 150주년을 기념해 2020년 12월 8일부터 2021년 12월 8일까지 ‘성 요셉의 해’로 선포했다.

성 요셉 칠고칠락

1678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은 성 요셉을 중국과 벨기에의 수호자로 공식 인가했다. 교황에 의해 성 요셉이 중국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자,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요셉에 관한 전기를 여러차례 발간했다. 브뤼에르 신부(Benjamin Brueyre, 이수방, 1808~1880)가 1862년 저술한 「중국대주보성약슬성월」, 북경교구장 들라플라스 주교(L. Gabriel Delaplace, 田類斯)가 저술해 1872년 북경에서 간행한 「성요셉성월」(聖若瑟聖月, 목판본) 등은 한국에도 전래됐다. 특별히 「중국대주보성약슬성월」은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 감수하에 1887년 한글로 번역됐다. 이후 1961년까지 거듭 재판돼 보급되며 신자들에게 성가정의 삶과 가장의 역할을 알리고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몫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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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칠고칠락은 브뤼에르 신부의 「중국대주보성약슬성월」에 실려있다.

이에 따르면 요셉의 일곱 가지 기쁨은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 모두를 위하여 마리아를 통하여 탄생하신다는 천사의 알림(마태 1,20) ▲많은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경배와 찬양(루카 2,14) ▲천사의 고함으로 아기를 예수라 하여 구세주이심을 알게 되심(루카 2,21) ▲성전에서 예수가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라는 예언을 시메온으로부터 들으심(루카 2,27-33) ▲이집트로 피난 가실 때 (마태 2,14) 모든 우상이 쓰러짐을 보심 ▲타국에 오래 있다가 나자렛 본향에 이르러 평안히 살게 되심(마태 2,20)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과 계신 예수님을 찾으심(루카 2,48)이다.

반면 일곱 가지 슬픔은 ▲마리아 태중의 잉태를 아시고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마리아를 떠나려 하심 ▲탄생하신 예수님이 말구유에 누워 계신 것을 보심 ▲예수님이 할례를 받으실 때 성혈을 흘리며 우는 소리를 들으심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라는 예언을 들으심 ▲헤로데왕의 박해로 예수님과 이집트로 피하심 ▲이집트에서 유다 땅으로 돌아오실 때 새 왕이 예수님을 해칠까 염려하심 ▲성모 마리아와 예루살렘 성전에 참배하고 오는 길에서 소년 예수님을 잃고 3일 동안 찾으려고 애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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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라파엘 멩스 <성 요셉의 꿈>, 1773~74년,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어느 수사 두 명이 바닷물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요셉이 구해 주시며 “모든 믿는 이들이 칠고칠락을 묵상하며 기도하면 나의 풍성한 은혜를 받을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성인이 겪은 칠고칠락을 묵상하는 것은 그분이 걸었던 영적인 길을 따라가고자 결심하는 것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고 「아버지의 마음으로」를 통해 “전능하신 분의 아드님께서는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그분께는 당신을 지켜주고 보호하며 돌보아주고 키워줄 요셉이 필요했다”고 강조하고, “요셉 성인은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도 신중하고 드러나지 않게 매일을 살아가는 사림이자, 구원 역사에서 필 수 불가결한 역할을 수행한 성인”이라고 했다.

현대에 와서도 교회는 중요한 갈림길에 설 때마다 성인에게 위탁했다. 성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리기 직전, 공의회의 준비와 성공을 위해 도움을 청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현대 교회에서 성 요셉의 사명을 ‘보호 및 방위·수호와 원조’라고 했다. 이런 가르침들은 성 요셉 성월에 드리는 여러 기도에 스며져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