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앙인으로 사는가? 주일미사에 참례하고 레지오 활동을 하고 구역모임 반모임에 빠지지 않는 이유가 뭔가? 크고 작은 봉사직을 맡아 헌신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사업이 잘되어 돈 많이 벌고 자녀들 건강히 자라 원하는 대학에 딱딱 붙게 해달라는 간절함 때문인가? 나와 가족들이 병에 걸렸는데 절절한 기도를 들어주시고 살려주셨기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뜨거운 신앙인으로 사는가? 신앙의 궁극적 바람은 무엇인가? 나와 내 가족의 안녕과 행복인가? 내 사업과 내 일들에 대한 보답인가? 내가 꿈꾸고 갈망하는 지위와 명예와 권력인가?”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어 초중고 내내 성당 주일학교를 다니며 학생회와 쎌 활동까지 한 뒤 대학생이 되어서는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다가 혼인 뒤 본당 사목위원으로, ME 발표팀으로 신앙생활을 지속해 온 나에게 스스로 묻는 질문이다. 나는 왜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가?
대학 4학년을 앞둔 겨울방학 때 서울에 우리집이 처음 생겨 감사한 마음에 집 가까운 잠실성당에 찾아가 미사를 드린 뒤 보좌신부님께 뭐든 시켜달라 했더니 주일학교 교사로 불러주셨다. 교사학교를 수료한 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아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는데 첫 수업 때 학생들에게 들은 얘기는 “교리 수업 재미없어요”였다. ‘멘붕’을 가라앉히며 그럼 뭘 하면 재미있겠냐고 물으니 축구를 하자길래 다음 주일엔 학생들을 데리고 한강에 가서 실컷 축구를 한 뒤 커다란 들통에 라면을 끓여 먹였더니 더없이 좋아했다.
교리를 전달하는 것보다 예수의 생애를 생생하게 알려주고 싶어 동료 교사들과 ‘예수 공부’를 시작했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와 사회를 이해하고, 예수가 만난 사람들과 어떤 일들이 있고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공부했다. 특히 예수가 누군가와 만나 음식과 술을 나눈 ‘잔치’에 관심이 끌려 복음서에 나오는 잔치 이야기들만 따로 모아 비교표를 만들기도 했다.
지도를 펴고 예수가 33년 생애를 보낸 장소들도 짚어보았다. 이현주 목사의 「예수가 만난 사람들」에 실린 세리 자캐오 이야기를 읽을 땐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톨릭교회에서 발간된 책들뿐만 아니라 안병무 박사의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출간한 책들과 잡지「살림」도 읽었고 좋은 강의가 있을 땐 직접 들었다. 민중신학, 해방신학, 사회학적 성서해석 등을 공부하며 예수가 살고 죽고 부활했던 그때 그곳이 생생한 ‘현장’으로 다가왔고, 그 현장은 2000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동료·학생들과 함께했던 젊은 날의 예수 공부 덕에 오랫동안 신앙을 잃지 않고 살았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또 내게 묻는다. “나는 왜 신앙인인가?” 같은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왜 이렇게 서로 다를까? 대한민국은 지금 두 쪽이 난 것 같다. 신앙인들의 정치적 견해야 다를 수 있겠지만 마치 같은 신앙의 이름으로 전혀 다른 신을 섬기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예수 신앙의 핵심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약자들에 대한 사랑 아닌가? 예수 신앙의 뿌리인 야훼 신앙 또한 노예들을 해방해 주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 아닌가? 입으로는 예수를 외치면서 실은 예수를 처형했던 유다 기득권과 로마 군대를 섬기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을 부르짖으며 바알신 맘몬에게 달려가는 것은 아닐까?
며칠 전 영화 <콘클라베>를 보며 가슴에 꽂힌 말이 있다. 로렌스 추기경의 대사였는데, 우리 신앙인들에게 전하는 하느님 말씀처럼 들렸다. 한 톨도 안 되는 너의 그 확신을 버리고 의심하라는.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고,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화합의 가장 큰 적이고 관용의 치명적 적입니다. 믿음은 살아 움직입니다. 믿음은 ‘의심’과 함께 존재합니다.”
글 _ 정석 예로니모 교수(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