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우주 발전과 진화의 출발이자 종착점으로 명시
인공지능(AI), 챗지피티(ChatGPT), 기계학습 등 현재 인류는 과거에 상상조차 힘들었던 놀라운 과학 기술 발전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는 그리스도교 신앙관과 가치관에 큰 도전이 되고 있으며, 다른 어떤 시대보다 도덕과 윤리에 대한 책임과 인간의 각성을 요청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과학적으로 사고하면서도 신앙 안에 머물 수 있다는 모델을 제시했던, 신학자이자 과학자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의 사상은 과학과 진화, 우주, 기술과 같은 담론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샤르댕은 20세기 가톨릭교회 안에서 가장 독창적 신학자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자신이 주님 부활 대축일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한 바대로, 1955년 4월 10일 주님 부활 대축일 저녁에 74세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올해 선종 70주기를 맞아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의 생애와 사상 등을 살펴본다.
신학에 자연과학 접목
샤르댕 신부는 1881년 프랑스의 클레르몽 훼랑드에 가까운 오르닉에서, 독실한 가톨릭신자 어머니와 자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11자녀 중 넷째였던 그는 아버지에게서는 지질학을, 어머니에게서는 신앙을 배웠다.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한 후 신학과 과학을 두루 공부했고, 1911년 사제품을 받고 나서도 1912년부터 파리 박물관에서 고생물학에 관한 연구를 계속했다. 1915~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위생병으로 참여했으며 이 기간의 공로가 인정돼 전투 훈장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험난했던 이때의 참전 경험은 자연과학적으로 많은 경험을 쌓게 하는 등 그의 신학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22년 파리 소르본느대학에서 자연과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한 샤르댕 신부는 1923~1946년 중국에 있으면서 ‘북경 원인’ 발굴 작업에 참여하는 등 과학 연구를 이어갔다. 1938년 「인간현상」의 초고를 완성하고 1946년 파리로 귀환한 그는 파리 과학 연구원과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연구와 교수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 발표와 교수 활동은 제약을 받았고 철학 서적 출판의 꿈도 이뤄지지 않았다. 시대를 앞서가는 과학적 성취가 당대 교회 안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탓이었다. 앞서 중국에 파견된 것도 과학적으로 추론된 신에 관한 사상이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 배경이 컸다.
하지만 인간과 진화론에 대해 신학적 해석을 한 그의 저술과 논문은 지성인들 사이에 선풍을 일으켰다. 「인간현상」 의 경우 교황청에서 서적 검열 중 문제점들이 지적돼 출판이 허락되지 않았으나, 등사본으로 수많은 독자에게 읽혔다고 한다. 1950년 프랑스의 자연과학 아카데미협회는 샤르댕을 회원으로 선출하기도 했다.
1951년 인류학 연구 기관인 뉴욕의 워너그렌 재단 상임 연구원으로 초청받아 일하게 된 샤르댕 신부는 남아프리카로 두 차례에 걸쳐 고생물학 고고학 탐사 여행을 다녀왔다. 원시 최초 인류들의 기원이 그곳에서 이뤄졌을지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1954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서 남아프리카에 대한 순수 자연과학적인 연구를 발표했으나, 강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 저항으로 강의 계획을 포기했고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듬해 눈을 감았다.
선종 70주기 맞은 신학이자 과학자
최초로 ‘우주적 그리스도’ 개념 언급
과학적 세계관과 신앙 통합 시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도 큰 영향
샤르댕의 사상 및 그가 남긴 공헌
샤르댕 신부는 사후에 그의 주요 저서 대부분이 출판됐고, 그는 교회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 2005년에는 샤르댕 신부 사후 50주년 기념으로 UN 본부가 ‘인류의 미래-테이야르의 현대적 의의’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했을 정도로, 그의 업적과 사상적 자취가 높게 인정됐다.
특히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샤르댕 신부의 신학 사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저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을 통해 그가 예수님에게서 드러나는 인성과 신성의 결합 의미를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의 지평에서 설명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신학자들은 샤르댕 신부가 현대 조직 신학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우주적 그리스도’ 개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과학과 신학의 통합을 시도했다고 신학적인 면의 공로를 언급한다.
박준양 신부(요한 세례자·레지오마리애 서울세나뚜스 담당)의 한 기고에 따르면, 샤르댕의 여러 저서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우주 전체의 진화와 발전을 역동적으로 촉진해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완성으로 인도하는 ‘우주적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적 전망이다.
샤르댕 신부는 우주의 발전과 동시에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점진적 진보를 강조했고, 이 모든 자연적 진화와 발전 과정이 최종적으로 수렴되는 종말론적 완성으로서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를 제시했다. 또 이를 그리스도와 연결해 신학적으로 개념화하고 해석했다.
박 신부는 “샤르댕 신부는 자신의 독창적인 우주적 그리스도 개념의 제시와 전개를 통해 과학적 세계관과 그리스도교 신앙관의 역동적인 통합을 시도했다”며 “그리하여 성경 말씀에 근거해 그리스도를 우주의 알파요 오메가로서 우주적 발전과 진화의 출발점이자 또한 종착점으로 명시한다”고 강조했다.
인간학이나 영성 면에서 샤르댕 신부의 주요 공헌은, 물질·우주·인간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 포함된 낙관적 의미와 희망을 발견하고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이런 그의 사상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공의회 회기 중 공의회 교부들에게 소개됐고 자주 언급됐다.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은 샤르댕 신부의 사상으로부터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문헌이다.
박재만 신부(타대오·대전교구 성사전담)는 가톨릭신문 기고문에서 샤르댕 신부가 20세기 쇄신적 영성에 있어 선각자라고 언급한다. 사후에 그의 저서와 사상이 그리스도교 안팎에서 주목된 것은, ‘샤르댕 자신의 과학적 진화론과 그리스도론에서, 현대인들에게 인류의 미래를 멀리까지 낙관적으로 예시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박 신부는 “이런 점으로 볼 때, 그는 현대의 사상가와 신학자들 가운데 인류의 미래를 가장 장엄하고 희망차게 열어 보인 사상가 및 영성가”라고 주장했다.
유정원 박사(로사·서강대 종교학과 강사)는 ‘신학과 과학의 대화-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사상을 중심으로-’ 논문을 통해 “샤르댕의 인간 이해와 그의 진화론적 현상학은 과학적 자료에 토대를 둔 것이었지만, 우주 진화는 독립적인 과정이 아니라 하느님을 통해서 진행된다고 보았다”며 “따라서 그의 진화론은 과학자들에게는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신학자들에게는 지나치게 과학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오늘날 그의 통찰은 과학과 종교 앙편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고 인정받는다”면서 “신학자들은 새로운 진화론의 관점에서 우주와 지구생태계를 바라보고, 과학자들은 과학적 지식에 담긴 영적 의미를 바라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제기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