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마음 드러내면 치유 가능…감출수록 교만으로 병들어
마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들을 관찰하고 악한 생각과 선한 생각을 식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악한 생각일 경우 시초부터 몰아내야 뿌리를 내려 발전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영적 스승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자기 마음속 생각을 모두 밝히는 것이다. 수도승 생활 초심자에게 ‘마음의 개방’은 매우 중요했다. 이 주제는 지난 호의 ‘마음을 돌봐라!’는 주제와 연결된다. 마음 돌보기의 핵심 내용인 악한 생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먼저 영적 스승에게 마음을 개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적 스승에게 마음을 개방하는 것은 초기 수도승 생활의 본질적 수행이었다.
영적 스승의 역할
초심자는 영적 수행과 영적 투쟁, 기도와 모든 육체적, 정신적 수행과 관련해서 영적 스승의 조언과 도움과 격려를 받아야 했다. 영적 스승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즉 숱한 실패와 잘못, 시행착오 등을 통해서 마침내 분별력의 은사를 얻은 사람이다. ‘분별’(diakrisis)이란 ‘영들에 대한 식별’을 뜻했다. 수도승을 공격하는 생각이 악령에게서 온 것인지, 천사나 성령에게서 온 것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분별력을 얻은 사람만이 영적 투쟁 중인 다른 사람을 안내할 수 있다. 초심자에게는 열정만 있고 이런 분별력이 없기에 이 길을 먼저 걸어간 경험 있는 원로를 안내자로 삼고 그에게 마음을 열고 순종할 필요가 있다. 제자는 영적 스승에게 마음속 생각을 남김없이 드러내야 스승이 그 생각들을 식별해서 적절한 처방을 내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제자 역시 점차 분별력을 얻고 영들을 식별할 수 있게 되어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이로써 제자는 또 다른 스승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 없이, 누구도 남을 올바로 지도할 수도 없고 감히 지도해서도 안 된다. 분별력이 없는 안내자는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마태 15,14)
스승의 분별과 판단에 순종하며 마음속 생각 남김없이 드러내야
교만은 영성생활에서 가장 위험…마음 개방은 겸손 실천하는 수행
생각을 드러내는 이유
누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영적 스승에게 굳이 이처럼 마음을 열고 순종할 필요가 있는가?’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악령에게 굴복하지 않고 그를 정복하기 위해서다. 초기 열심한 그리스도인들이 사막으로 들어간 이유 중 하나는 악령과 직접 맞닥뜨려 싸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경험자의 조언과 도움이 없다면 초심자는 악령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익명의 압바는 악한 생각들이 싸움을 걸어오면 그것들을 감추지 말고, 즉시 영적 사부에게 이야기하라고 권고한다. 악한 생각은 구멍에서 나온 뱀과 같아서 드러나면 멀리 달아나지만, 감추면 감출수록 더 강해지고 많아져 나무 속에 있는 구더기처럼 우리 마음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은 즉시 치유되지만, 감추는 사람은 교만으로 병이 든다고 한다.
카시아누스는 악습과 악령을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 중 하나를 제시하는데, 곧 연로하고 경험 많은 영적 사부에게 자기 마음을 개방하는 것이다.(규정집 4,9.37) 그 이점에 대해 안토니우스 압바는 알려지는 것이 부끄러워서라도 죄짓기를 멈추고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안토니우스 생애 55,11-12) 수도승에게 가장 큰 위험은 자기 마음을 영적 사부에게 개방하지 않고 자신 안에 가두는 것이다. 반대로 스승에게 마음을 연 제자는 스승의 기도와 조언으로 온갖 위험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다.
자기 뜻의 포기인 순종
제자가 스승에게 순종하는 이유는 자기 뜻과 싸우기 위한 것이다. 사막 교부들은 모든 죄가 하느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더 좋아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영적 사부에게 순종함으로써 얻게 되는 자기 뜻의 포기를 강조한다. 포이멘 압바는 말한다. “인간의 의지는 그와 하느님 사이에 가로놓인 황동 벽이자 걸림돌입니다. 인간은 의지를 포기할 때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성벽을 뛰어넘습니다'(시편 18,3) 의지가 올바른 것과 조화를 이룬다면 인간은 참된 수고를 할 수 있습니다.”(포이멘 54)
초심자는 그릇된 수치심 때문에 자기 마음을 갉아먹는 생각을 감추지 말고, 그런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영적 사부에게 드러내라고 배운다. 그리고 그 생각을 분별하기 위해 자기 개인의 의견을 신뢰하지 말고, 원로가 검토한 후 나쁘거나 좋다고 판단한 것을 믿도록 배운다.(규정집 4,9)
수도승 생활 초기에는 사막에 새로 도착한 사람이 원로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동굴이나 암자에 정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때로 비참했다. 안토니우스는 이렇게 증언한다. “어떤 이들은 금욕 수행으로 자기 몸을 해치지만, 그들은 식별력이 부족하여 하느님에게서 멀어집니다.”(안토니우스 8) 이처럼 스승의 분별과 판단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젊은 수도승은 마음이 깨끗해지고 자신의 욕정을 길들이게 되어 마침내 내적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영성 생활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스스로 남의 스승이 되어 지도하려는 유혹은 상존한다. 이런 유혹은 교만에서 나오는 헛된 망상일 뿐이다.
겸손으로 이끄는 순종
자기 뜻을 포기하는 순종은 우리를 모든 덕의 정점인 겸손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 하느님을 향한 영적 여정에서 제자가 스승에게 마음속 모든 생각을 드러내고 스승의 분별과 판단에 따르는 것은 겸손이 바탕을 이루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그래서 스승에게 마음을 개방하는 이 수행은 결국 겸손과 순종을 실천하는 수행이기도 하다.
영성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교만이다. 경험으로 터득한 지혜와 분별력이 아니라, 얄팍하고 피상적인 지식으로 섣불리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판단을 무시하고 자기 뜻과 판단에 따라 모든 것을 처리하려는 자세는 모두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막 교부들의 “마음을 드러내라!”는 이 권고는 영성생활에서 경험 있는 안내자의 중요성, 분별력의 중요성, 마음의 개방성, 남의 조언을 청하고 경청하는 겸손한 자세, 자기 뜻을 내려놓는 자유로움 등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글 _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대구대교구 왜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