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시복된 순교자…배교·순교 고민하는 인간적 모습에 공감 엔도 슈사쿠 지음/이건숙 수녀 옮김/287쪽/1만7000원/불휘미디어
17세기 일본은 신앙에 있어 암흑기였다. 도쿠가와 막부는 그리스도교를 철저히 금지하고, 신자들에게는 무자비한 박해가 이어졌다. 이 가혹한 시대에 한 일본인 청년이 마카오, 인도, 중동을 넘어 로마에 이르고, 사제가 되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순교에 이르는 길을 걸었다. 믿기 힘든 이야기 같지만, 이는 일본 가톨릭 순교사에서 전설적 인물인 복자 베드로 키베 토마스 신부의 실제 행적이다.
「총과 십자가」는 이런 박해 시대를 배경으로, 키베 신부의 삶을 따라가며 인간과 신앙, 고통과 구원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색했다.
오랫동안 일본에서 본당 선교활동과 함께 나가사키 순교성지를 안내한 이건숙 수녀(율리엣다·예수 성심 시녀회)의 번역에는 일본교회를 향한 깊은 시선이 녹아있어 작품의 몰입도를 더욱 끌어올린다.
일본의 현대 그리스도교 문학을 대표하는 엔도 슈사쿠는 「침묵」 등에서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믿음과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소설은 키베 신부의 삶을 전기적으로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강인한 믿음을 지녔으나 두려움과 의심, 죄책감과 절망에 흔들리는 '한 인간' 키베의 모습을 통해 종교적 헌신과 인간적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배교와 순교’라는 극한의 선택 앞에서, 믿음의 본질을 묻는 깊은 질문을 던진다.
1587년 무렵 신실한 신앙인 가정에서 태어난 베드로 키베는 아리마 신학교에서 사제 수업을 시작했으나, 금교령으로 일본 내 선교사들이 추방되자 마카오로 향했다. 신학 공부를 이어가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다시 인도 고아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이곳에서도 사제 수업은 불가능했다. 마지막 희망은 로마였다. 그는 홀로 배를 타고 페르시아만을 건너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하고, 지중해를 건너 천신만고 끝에 이탈리아에 입성한다. 사제품을 받는 그는 안락한 사목의 길을 뒤로한 채, 박해받는 일본 신자들과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1630년, 16년 만에 귀국한 그는 은둔 신자들이 많았던 센다이 지역에서 선교를 이어가다 1639년 체포된다.
이후 벌어지는 고문과 배교의 유혹, 동료 선교사와 신자들의 순교 장면은 ‘고통 앞에서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지’, ‘믿음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배교’라는 말이 튀어나올까봐 죽음보다 두려워했던 ‘아나즈리’ 매달리기 고문을 당하는 중에 그가 바치는 기도는 절절하다. “하느님은 어찌하여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무엇 때문에, 왜? … 주님 용서하소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주님 어서 죽게 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 고문에 넘어가고 맙니다.”(263쪽)
키베 신부는 엔도 슈사쿠의 다른 작품 속 인물들처럼 배교하지 않는다. 그는 끝까지 견뎌내고, 마침내 순교로써 믿음을 완성한다. 그럼에도 두려워하고 고뇌하며, 때로는 외로운 침묵 속에 머무른다. 저자는 그 힘의 근원을 “예수의 고독과 자신의 고통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에서 찾는다. “홀로 죽음을 향한 예수의 존재를 키베는 자신의 고통 속에서 만났을 것이다.” (264쪽)
「총과 십자가」는 폭력과 세속 권력 앞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길을 묘사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대구대교구 총대리 장신호(요한 보스코) 주교는 추천사에서 “무저항의 저항인 순교의 길, 곧 십자가의 죽음을 따르는 길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올바른 선교라는 것을 전한다”고 말했다.
복자 베드로 키베 토마스 신부는 2008년 11월 24일, 동료 순교자 187위와 함께 나가사키에서 시복됐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