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49) 넉넉함과 투덜거림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8-23 수정일 2016-08-24 발행일 2016-08-28 제 300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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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신부에게 들은 따뜻한 이야기 하나 나눌게요! 어느 날, 사제관 주방 자매님이 집안 일로 쉬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동창 신부는 보좌 신부님과 점심을 사 먹기로 했답니다. 여름 방학은 보좌 신부님들의 고된 계절이라는 말처럼, 행사로 너무 지쳐 있는 보좌 신부님 모습이 안쓰러워 동창 신부는 뭔가 맛난 것을 사주고 싶었답니다. 점심때가 되자, 성당 마당에서 보좌 신부님을 만나 물었답니다.

“우리 뭐 먹을까?” 평소 보좌 신부님은 ‘주임 신부님 좋아하시는 것이면 다 좋다’고 말했을 텐데, 그날 따라 성당 근처에 싸고 맛있는 내장탕집이 있다면서, 거기 가면 어떠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당연 좋지!’하며, 둘은 식당을 찾아 걸었답니다. 그날, 어찌나 더운지! 성당 근처라고 말했지만, 성당 앞 고가 계단도 오르고 내렸고, 뜨거운 아스팔트 옆길을 걸어가는데, 동창 신부는 속으로 ‘집에서 아무 거나 먹을 걸, 괜히 나왔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런데도 보좌 신부님은 주임 신부님과 내장탕 집을 간다는 생각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즐겁게 걸었답니다.

꽤 걷다 보니, 동창 신부는 속으로 ‘아, 아무거나 먹자, 아무거나!’, 하지만 겉으로 미소를 짓는 척 보좌 신부를 따라 걸었답니다. 이제 거의 다 온 듯하더니, 보좌 신부님은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

“여기가 아닌가 봐요!”

그렇게 또 두리번두리번 하더니 다른 골목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또 두리번두리번! 동창 신부는 속으로 ‘점심 안 먹어도 좋은데! 아무거나…아무거나!’ 그런 다음 몇 골목을 헤맨 뒤에 드디어 허름한 음식점을 찾았답니다. 그리고 들어갔더니, 직장인들이 바글바글. 사람들이 이제 막 식사를 끝내고 나오고, 또 들어가고! 두 사람은 들어가자마자, ‘시원한 자리’를 찾았지만, 더운 바람이 부는 자리뿐. 그래도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시원한 물을 가지고 왔답니다. 우선 두 사람은 물을 두 컵 정도 벌컥 벌컥 마셨습니다. 그리고 보좌 신부님은 야심차게 주문했습니다.

“내장탕 두 개 주세요.”

그러자 종업원이 하는 말,

“여름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 손질하기가 어려워서 안 해요. 내장탕은 가을부터 됩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보좌 신부님 표정. 다 괜찮다는 주임 신부의 표정. 할 수 없이 지금 빨리 되는 음식이 뭐냐 물었더니, ‘김치찌개’였답니다. 두 사람은 찜질방 수준의 좁은 식당에서, 흘릴 수 있는 땀을 다 흘리면서, 뜨끈한 김치찌개를 먹고 나왔습니다. 다시 돌아오는 길, 고가 계단을 올라가기 전, 보좌 신부님은 미안한 얼굴로 주임 신부에게 물었답니다.

“혹시 괜찮다면, 제가 업어 드릴까요?”

땀을 폭포처럼 흘리는 보좌 신부님의 다 젖은 등짝에 업힌다는 것! 마음은 아름다운 사랑인데, 너무 끈적이는 사랑이라 정중히 사양했답니다. 마음 착한 보좌 신부님이랑 걸으며 흘린 땀줄기, 그래도 마음속으로 부는 형제애라는 시원한 바람 한 자락이 두 사람의 영혼을 시원하게 감싸 주더랍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