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여성들과 동병상련하는 사람들의 ‘미투’(Me Too) 운동으로 조용히 숨죽이며 가라앉아있던 흙탕물들이 팥죽 끓듯 끓어올랐다. 우리가 그동안 존경하고 기대하고 우러러보던 이들의 실체를 지켜보며 인간에게 믿음과 존경이란 얼마나 덧없고 허무하고 무의미한지 알게 된 것은 참담하고 슬펐다. 그동안 가부장제와 폭력사회의 얼음 속에 깊숙이 얼어있던 온갖 적나라하고 추악한 실상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을 지켜보면서 오래전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퉁퉁 불은 모습으로 발견된 그 여자 생각이 났다.
여리고 곱고 순해서 투명한 봄볕 같았던 그녀의 삶이 한순간에 피폐해진 것은 그 남자의 완력에 끌려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후부터라고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그녀 깊숙이 뿌리내린 그날의 상처가 그녀를 할퀴어 일상생활조차 감당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착하고 성실한 그녀의 남편을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다며 괴로워했었다. 수치심과 불안과 자책으로 자신을 학대하며 소심하고 어둡고 우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다 먹먹해진다. 핏기 없이 넋이 나간 아내를 지켜보며 괴로웠을 그녀의 남편도 그녀의 가엾은 아이들도 딸을 동생을 언니를 잃은 그녀의 친정 피붙이들도 모두가 피해자였다.
맞은 사람은 발을 뻗고 편히 잔다고들 하지만 그날의 호된 폭력이 오래도록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워 잠을 이룰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아니 같은 여성들조차도 애써 노력해서 성공한 능력 있는 가해자가 Me Too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을 안쓰러워하며 피해자인 그녀들 보다 더 가엾게 여기곤 하는 것을 본다. 물론 오랜 세월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내려온 남성 위주의 성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정말 달라져야 한다. 그 누구라도 뜨거운 심장과 생각과 감정을 지닌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허울뿐인 가면과 이름은 이제 바닥에 내려놓아야 한다. 사실을 왜곡하고 오직 차가운 계산으로 다급한 상황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진실은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동안 잘못한 것들은 통찰과 사색을 통해 깊이 반성하고 진심을 다해 정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상처 입고 울부짖는 그녀들에게 더 늦기 전에 용서와 참회를 구할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만이 그녀와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다. 영혼이 아픈 그녀들의 응달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날 때까지 가해자는 죽음으로 용서를 구하지 말고 묵묵히 고개 숙여 인내하며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고백하고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사람은 용서해 주자. 가해자의 뼈아픈 속죄와 피해자의 눈물겨운 용서로 세상의 모든 상처가 환하게 치유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