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3일 뜨거운 뉴스가 전파를 탔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가 경기 성남시에 있는 서울공항을 이륙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날아 38선을 넘었다. 오전 10시30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비행기 문이 열렸다. 공항에 운집한 군중이 일제히 꽃을 흔들었다.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았다. 기다리던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일이 다가와 웃음으로 악수를 했다. 남과 북이 손을 잡았던 것이다.
나는 눈이 뜨끈했다. 코끝도 시큰했다. 전화를 했다. “아버지, 텔레비전 지금 보세요?” 분명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는데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막내야, 네 아버지 우신다. 나중에 통화하자.” 수화기에서 아버지 대신 어머니 목소리가 나왔다. “네, 엄마.”
그날 나는 일찍 퇴근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당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건너편에 있는 평래옥으로 갔다. 아버지 단골집이었다. 손님들로 북적댔다. 대부분이 이북 어르신들이었다. 그날은 더 많았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된 날이었으니까.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어르신들은 저마다 다른 희망을 쏟아내면서 목소리 높였다. 그러나 공통점은 단 하나, 살아생전에 고향 가기였다.
이건 아버지도 똑같았다. 그날 실향민 아버지와 실향민 아들인 나는 평양식 쟁반에 소주를 곁들였다. 어머니는 냉면과 찐만두를 건네며 아버지를 달랬다. 실향민들에게 냉면은 겨울이고 여름이며 계절을 가리지 않는 고향이니까.
그다음 주에는 함경북도 성진이 고향인 아동문학가 박홍근 선생님과 성진에서 자란 아버지를 아바이순대 집으로 모셨다. 두 ‘아바이’는 함경도 사투리로 구수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성진에 대해서.
그러나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처음으로 만나 악수한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도,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 사이에 두고 첫 만남을 가졌을 때도, 그리고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났을 때도 아버지와 박홍근 선생님을 평래옥에, 아바이순대 집에 모실 수 없었다. 성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두고 온 아버지는 2003년에, 박홍근 선생님은 2006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고사성어 ‘노래지희(老萊之戱)’가 생각난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 들어도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은 똑같으니 변함없이 효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때 효자 노래자가, 나이 칠십에도 색동옷 같은 어린애 옷을 입고 늙은 부모 앞에서 재롱떨어 즐겁게 해 드려서 늙음을 잊게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노래자(老萊子)는 매일 끼니때마다 밥상을 직접 갖다 드리고, 다 드실 때까지 마루에 엎드려 있었다. 때로는 물을 들고 마루로 올라가다 일부러 넘어져 마룻바닥에 뒹굴면서 엉엉 울었다. 이걸 보고 자기 어릴 때를 생각하게 해서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그랬던 것이다.
탈출기 20장 12절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며 십계명 중 제5계명을 가르쳐 주신다. 부모에게 자식은 아무리 나이 들어도 어리게만 보인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근심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철이 들어 효도하려는데 막상 아버지는 내 옆에 없다. 아버지를 주님 곁으로 보낸 어머니는 내년이면 구순.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던 내가 제대하고 복학한 아들을 불렀다. “아들, 내일 약속 있니?” “왜요?” “엄마랑 같이 할머니께 가려고.”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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