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언제나 곁에는 / 안영실

안영실 (루치아) 소설가
입력일 2018-12-24 수정일 2018-12-26 발행일 2019-01-01 제 3126호 2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성모님을 두 번이나 친견했다”는 말을 하면 남편은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며 웃는다. 그리곤 꿈은 잠재된 의식의 표출이니, 졸다가 헛것을 봤을 것이라고 단정해버린다. 하긴 그 일은 나와 성모님 사이의 온전한 교감이니 누구에게 확인받을 필요가 없다.

처음 성모님을 뵌 날 내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다. 늦은 나이에 출산하고 나는 몸이 많이 아팠다. 날로 더해가는 전신 통증과 산후 우울증이 겹쳐 일상생활마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늘 바쁜 남편에게 말해봐야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날도 나는 갓난아이를 재워놓고 곁에서 함께 누웠는데, 몸이 침대 밑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아프다가는 병명도 모른 채 죽고 말겠구나’ 하며 절망에 빠져 있는데, 검고 무거운 구름 같은 것들이 나를 에워싸더니 가슴을 엄청난 무게로 짓눌렀다.

이제 악마에게 둘러싸여 지옥으로 떨어지려나 보다 생각하니 너무 두려웠다. 그런데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곁에 누운 갓난아이였다. 이 핏덩이를 두고 죽어버린다면 아이는 누가 키울 것인가. 이미 전처가 죽어 홀로 두 딸을 키운 전력이 있는 남편은 또 얼마나 슬픔에 빠질 것이며 인생은 얼마나 무거워질까 하는 생각이 미쳤다. 사실 생각이고 뭐고 할 겨를도 없었다. 모든 생각과 변명이 섬광처럼 스쳤다.

그 순간 나는 주님의 기도를 외우기 시작했다. 성당에서 예비신자 교육을 받다가 세례성사를 채 받지도 못하고 출산을 했던 나였기에, 주님의 기도가 그렇게 저절로 흘러나올 줄은 몰랐다. 눈을 떴지만 꼭 가위에 눌린 듯이 입이 막혀 기도가 음성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간신히 주님의 기도를 머릿속으로만 외웠지만, 검은 기운들은 아직도 나를 에워싸고 가슴을 짓누르며 내 영혼을 끌어내려는 듯 잡아당기고 있었다. 마리아님은 예수님께 간구하고 봉헌할 어려움을 대신 구해주시는 분이라던 수녀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나는 어머니 마리아님을 불렀다. 입이 막혀 말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외치고 또 외쳤다.

“살려주세요, 어머니. 이 아이를 키워야 해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아니 사춘기가 될 때까지, 아니 초등학교라도 마칠 수 있을 때까지 제 손으로 보살피게 해주세요. 마리아님! 살려주세요.”

죽을힘을 다해 부르고 또 부르자 갑자기 입이 터졌고, 마리아님이라고 부르는 외침이 내 귀에도 들렸다. 검은 기운은 삽시간에 사라졌고, 눈부신 빛이 펼쳐지며 어머니 마리아님이 손을 내미셨다. 빛이 따뜻하게 나를 품어주며, “그래 엄마로 살 거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얼마나 힘껏 불렀는지 온몸에 힘이 다 빠져서, 나는 누운 채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고백을 드렸다. “고맙습니다. 저는 누가 뭐래도 죽을 때까지 성모님을 따르겠습니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함께 절에 다니던 불자였다. “개종하고 성당에 다니라”는 남편의 요구가 벅차기도 했고, 미사 의식도 답답했다. 그런 나를 성모님은 성당으로 인도하셨고 엄마로 살 기회를 주셨다. 그때의 갓난아이는 지금 스물다섯 살이 됐다. 요즘도 나는 가끔 검고 무거운 기운을 물리치며 나타나셨던 성모님의 환한 빛을 떠올리곤 한다. 아마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 좀 민감해 성모님을 뵌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친견하지 못해도 언제나 우리 곁에는 성모님과 예수님이 계시면서 살피고 아껴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의지하고 행동하는 삶이 내게는 신앙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영실 (루치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