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성 데레사 수녀(이하 마더 데레사)는 교회 내외를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성인이다. 하지만 그가 예수회 출신 이안 신부(1928~2000, 사랑의 선교 수사회 입회 후 앤드류 수사로 불림, 이하 앤드류 수사)와 함께 설립한 ‘사랑의 선교 수사회’(이하 수사회)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나를 섬기라”는 부르심을 받고 평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마더 데레사. 그의 정신이 수사회에 그대로 녹아있다.
성소 주일(4월 25일)을 맞아 올해로 수사회에 입회한 지 40년이 되는 이재달 수사(사랑의 선교 수사회 동아시아 한국관구 서울 본원 원장)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그리스도로 섬기며 살아가는 수사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 가난한 이들 속에서 현존
“가장 오래된 가족은 38년이나 됐어요!”
이재달 수사가 말하는 가족은 노숙인이다. 노숙인을 비롯해 전신마비 장애인 등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힘든 7명의 ‘가족들’이 수사들과 함께 서울 삼선동 수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다.
“20~30년씩 같이 살다 보면 가족이나 다름없죠. 예전에는 정말 누구나 데리고 와서 쉬고 먹고 같이 생활했는데, 지금은 절차가 까다롭게 돼서 함부로 못 데리고 와요. 코로나19 이후에는 봉사자들도 못 와서 저희가 모든 부분을 다 돌봅니다.”
수사들은 기도하는 시간 빼고 가족들과 모든 일과를 함께한다. 청소부터 요리, 배식, 목욕, 치료 등은 물론 언제 응급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늘 긴장 속에 산다.
일주일에 두 번은 서울역과 을지로역에 있는 노숙인들을 방문해 옷가지 등을 가져다 주면서 말동무가 되기도 한다.
조금 더 쉬운 길이 있을 법도 하지만, 이 수사의 신념은 단호하다.
“한국 공동체는 절대 큰 시설을 가지지 말고, 가족같이 작은 공동체를 유지하며 가난한 이들과 지냈으면 좋겠다는 수사회 공동창설자 앤드류 수사의 말을 늘 기억합니다. 아직까지는 그 조언을 실천하고 있죠.”
그는 “실제로 마더 데레사의 주 활동지역이었던 인도 출신 수사들도 한국으로 파견 나오면 매우 힘들어 한다”며 고충을 나눴다.
■ 하느님 섭리
아무리 좋은 뜻이 있어도 자신의 시간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내어주면서 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수사들에게도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이 수사는 “지원기 시절 일이 너무 힘들고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차별받는 상황도 있어 수사회를 나가기로 결심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퇴회하기로 결심한 다음 날 수사회로 복귀하지 않고 부산 자갈치 시장을 찾았습니다. 생각 없이 걷고 있었는데 정말 고약한 냄새가 나는 노숙인이 있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어차피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갈고리로 낚아채듯이 잡아 당기더군요. 어쩔 수 없이 그 노숙인에게 다가갔습니다. 보통은 첫 마디가 욕을 하는데 그는 ‘내가 오늘 여기서 너를 기다렸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본인이 구걸한 돈을 가지고 저에게 막걸리를 사주기까지 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성소 갈등이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성소가 더 굳어졌죠. 그 노숙인을 만나러 다시 갔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만날 수 없었어요. 저에게는 하느님 섭리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