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교로 증거한 신앙
이들은 체포돼 투옥 이튿날부터 문초를 받았다. 최경환은 아들이 신학생으로 선발돼 유학 갔다는 이유만으로 더 극심한 형벌을 받았다. 최경환은 40일 이상의 참혹한 고문 속에 110여 대의 곤장을 맞으면서도 하느님을 증거했다. 굳건한 태도에 외교인들조차 천주 신앙을 찬미하게 했던 그는 9월 12일 포청옥에서 순교했다.
이성례도 1840년 1월 31일, 당고개에서 6명의 신자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최경환의 유해는 순교 후 여러 번 장소가 옮겨지는 어려움 끝에 둘째 형 최영겸 부자가 수리산에 안장했다. 묘역에는 후손들이 기증한 손뼈 5기가 봉안돼 있으며 묘역 십자가 중앙에 손마디가 안치돼 있다. 순례자성당과 최경환 성인 생가 성당에도 유해가 모셔졌다. 1984년 성인의 시성식에 즈음해 묘역에 순교기념비가 건립됐다.
■ 성가정의 모범, 성소의 못자리
수리산성지는 최경환의 가족과 이웃들이 복음적 기쁨과 희망으로 살았던 교우촌이자 최양업이 신학생으로 선발돼 사제의 길을 시작한 한국교회 성소의 요람이기도 하다. 박해와 환난을 당하면서도 모두가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기꺼이 잡혀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뜨거운 믿음의 산실이다.
이러한 최경환 가족의 영성을 본받아 수리산성지는 특별히 성가정을 위해 기도한다. 아울러 개인 성화 및 최양업이 신학생으로 선발된 성소 못자리였던 것을 되새겨 성소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지로 가꿔지고 있다. 또한 성인기념경당과 순교자박물관, 짜임새 있는 홍보관을 통해 누구라도 성지를 방문해 신앙적 가치의 고귀함을 접할 수 있는 문화사적지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