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사람

구 주교, 염원대로 한국땅에 묻혀

입력일 2020-09-14 13:53:20 수정일 2020-09-14 13:53:20 발행일 1971-01-10 제 75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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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훈 심어두고 주의 품에
【삼척】한국 천주교회의 숨은 공로자였고 한국인에겐 따뜻한 미소와 마음씨로 다정한 벗이며 목자였던 구토마 주교는 사랑했던 한국을 결코 떠나지 않은채 뼈를 이 땅에 묻음으로써 얼마나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했던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31일 밤 임종후 유해는 2일 오후 7시경 성요셉병원에서 약 15m 떨어진 성내리성당으로 옮겨 안치되었다. 성당안엔 이곳 교우들이 교대로 유해를 지키며 연도를 바치고 있었고 석양이 비친 제대벽에 그려진 예수고난상은 이 거인(巨人)의 수난에 찬 생애를 말하는듯 숙연했다.

그는 본당신자가 8푼두께 합판(合板)으로 짠 관속에 주교복을 정장한채 조용히 누워있었고 기도하는듯 모아 쥔 두 손엔 평소 사용하던 묵주가 금방 흘러내릴듯 쥐어져 있었다.

4일 오후 유해는 영결미사를 마치고 꼴룸바노회 신부들 손에 운구되어 성당뒷벽 곁 양지바른 곳에 안장되었다.

영결미사중 구 주교가 관할 교구에 머물렀던 관계로 상주(喪主)가 된 지 주교는 강론에서 그의 업적과 인간성을 얘기하면서 몇번이나 목이 메어 강론이 중단되곤 했다.

68년 10월 병원에 옮긴후 의사와 간호수녀들의 극진한 정성속에 그런데로 유지되어오던 병세가 구랍 23일 새벽 3시부터 갑자기 악화, 담당간호원의 연락을 받고 의사 다윗 수녀가 1층 79호 구 주교 방에 뛰어갔을때 그는 심한 가슴의 고통으로 혼수상태였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조금 회복되자 구 주교와 동향인 다윗 수녀가 『주교님 고향생각이 나시죠 조카들이 참 귀엽게 생겼지요』하고 말을 시키자 『다윗 수녀님 말은 말고 책을 읽어주신다면 대답할텐데』하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성내리본당 맥스위니 신부는 곧 지ㆍ박 두 주교에 알린후 24일 오후 11시에 그레디 신부와 같이 병자성사를 주었다.

25ㆍ26 양일을 고통중에 보냈다. 26일 오후 8시쯤 지 주교ㆍ박 주교ㆍ데루까 도메니꼬 몬시뇰 세분이 달려왔다. 이 자리에서 지 주교는 교황 특별강복을 대신 전달했다.

27일 오후부터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던 구 주교는 임종을 몇시간 앞둔 31일 저녁 8시경 다윗 수녀에게 조금 걸어도 좋으냐고 묻고 방안을 몇발짝 걸어보이더니 『걸으니깐 좋군 그런데 기운이 없군』하더니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걸음이었다. 마지막 외출은 작년 10월 3일 청주교구장 정주교 성성식 때였다. 10시경 찢는듯한 고통을 참으려는 거인다운 인내 끝에 55분 숨을 거두었다.

다윗 수녀가 눈을 감기자 맥스위니 신부가 이제 오랜여정 끝에 천주의 품에 안기려는 그에게 마지막 강복을 내렸다.

그가 병원에 있은 2년2개월은 36년간 한국에서 불우한 이들에게 베푼 사랑의 집약이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면 3층에서 수녀들과 같이 미사를 드린 후부터 그의 일과는 기도와 외국 친지들에 편지 쓰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한국의 불쌍한 형제들을 위해. 그는 말없이 병원에 오는 환자중 수술비가 없어 수술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수술비를 대주곤 했다고 다윗 수녀는 목이 멘다. 그의 업적은 춘천교구를 맡은후 40여개의 성당과 공소 1백여개를 직접 돌아다니며 세웠고 강릉 삼척 춘천엔 병원을, 1960년엔 삼척에 상수도를 시설하는데 결정적인 뒷바라지를 하는 등 밖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사랑에 찬 마음과 능란한 화술 풍부한 유머로 사람을 포근히 감싸 많은 영혼을 끌어드린데 있다. 「죽음의 행진」에서 얻은 심장질환을 치료차 60년 본국에 갔을때 친지들이 머무를 것을 권했지만 끝내 뿌리치고 다시 돌아와 생애를 마쳤다. 그는 갔다. 숨이 차 병원층계를 뒷걸음으로 오르면서도 고해소에 앉아 『나는 민 신부(맥슨위니) 보좌신부입니다. 고백성사는 나한테 보시오』하며 성사주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그리스도의 제자로, 죽음의 행진에서 눈보라속을 비틀거리는 미국포로들을 격려하든 불굴의 인간으로, 공산군이 남침하자 피난을 서두르는 본당 신부들에게 신자들이 모두 피하거든 떠나라고 엄명하던 어진 목자로, 이 모든것을 자신이 산 본보기로서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뜨겁게 심어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