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53) 좋은 감동, 힘든 변화 ②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09-23 수정일 2014-09-23 발행일 2014-09-28 제 291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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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정말 힘든 변화
오랜만에 만난 몇몇 신부들과 나눈 대화 주제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삶이었고, 한국 방한 동안 교황님이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신 모습은 사제들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성찰의 거울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역 근처 노숙자분들이 많이 있는 지역을 우연히 지나면서 느끼게 된 어느 신부님의 내적 고백은 현재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사제들에게 많은 묵상거리를 주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계속 그 길을 지나는데, 도로 가장자리 옆에 공중전화 박스가 있더라. 그런데 그 안에 노숙자 한 분이 다 해어진 옷을 입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었어. 내 생각으로 그분은 식당까지 갈 힘도 없나봐. 그저 누군가 자기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워주고 식당에 데려다 주기를 바라는 듯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암튼 나는 그쪽을 힐끗 쳐다봤더니, 그분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지. 그리고 그분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휙 돌리게 되더라. 정말 무의식적인 반응이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과 눈을 더 마주쳤더라면, 그분이 나에게 도움의 손짓을 요구하지나 않을까 내심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 언젠가 읽은 책에서 교황님은 노숙자들에게 돈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진정 따스한 눈길을 건네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하지만 나는 평소 만나지 않던 분들의 삶을 대하다 보니, 몸부터 긴장을 하니, 모든 것이 다 긴장되고, 그러다 보니 모든 상황마저 부정적으로만 생각되는 거야! 정말 부끄러웠지. 암튼 애써 태연하게 걸으려 했지만 긴장 때문에 그곳을 지나면서 무척이나 빨리 걷는 나를 보게 되었지!”

함께 있던 다른 신부님이 말했습니다.

“나도 성경에 있는 ‘거지 라자로의 비유’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신자들에게 강론을 할 때면, 내가 얼마나 의인인 듯 살고 있는 것처럼 멋진 강론을 했지. 하지만 실제로는 내 자신이 거지 라자로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이었고, 강도를 만난 사마리아 사람 곁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그냥 스쳐 지나가버린 사제였는데 말이야.”

그 신부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날 나는 원래 만나야 할 노숙자 분들을 한순간에 다 본 것 같아.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내 영역 안에서만 열심히 지냈고, 타인들에게 폐 안 끼치며 살았고, 내 본당 신자들하고 잘 지냈으며, 나와 생각과 마음이 비슷한 사람들하고 친분 관계를 잘 맺고 생활을 했지. 그러다 보니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할 틈이 없었어. 그런데 이건 핑계지! 교황님이 반포하신 회칙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님은 우리에게 변방으로 가서, 가난하고 소외받고 있는 이들의 삶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이 나! 처음 그 내용을 책으로 접했을 때에는 깊은 감동이었지만, 삶의 방향은 전혀 그곳으로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하며 살아왔지. 그러다 보니 마음으로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은 많이 했지만, 막상 그들이 내 눈앞에 불쑥 나타나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분들이 하느님의 선물이라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분들 만나면 그들로 인해서 혹시나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애써 피하게 되는 겁쟁이가 되어 있는 거지!”

교황님은 우리에게 좋은 감동을 풍성히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감동 안에는 우리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함께 요구하십니다. 힘든, 정말 힘든 변화 말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