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55) 어느 모자(母子)의 저녁 식사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10-07 수정일 2014-10-07 발행일 2014-10-12 제 2914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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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랑
외국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수도원 후배 신부가 모처럼 한국에 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내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사랑하는 선배님, 휴가 왔습니다. 저녁 같이 먹읍시다. 시간 좀 내시죠!”

순간 ‘아, 할 일이 산더미 같이 밀려있는데!’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당연하지. 얼마나 고생하는데! 그려, 시간 내야지. 어디로 갈까?” 장소를 정하지 못한 채, 수도원을 나와 무작정 시내로 갔습니다. 이 집, 저 집 싸고 맛있는 집을 찾아 기웃거리다가 값싼 고깃집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저 집이야!’ 그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대부분 식탁에는 ‘예약석’이라는 팻말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나오려는데, 문 앞에서 종업원이 우리에게,

“우리 집 고기, 싸기도 싸지만 정말 맛있어요.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단체 예약이 온 거예요. 자리 있어요. 한 번 먹어 보세요.”

종업원의 말에 귀가 솔깃하여, 우리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고기 2인분을 시켜서, 대화를 나누는데, 뒤이어 들어온 모자가 우리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젊은 엄마와 엄마를 똑 닮은 아이였는데, 초등학교 5~6학년 즈음 보였고, 핏기없는 얼굴로 삭발을 한 그 아이는 병원 환자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왠지 모를 감정이 끌려, 내 눈으로는 후배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귀로는 옆 테이블의 모자를 바라보는 그런 형국이었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쉬지 않고 재밌게 이야기를 하는데, 옆 식탁에서는 두 사람이 먹기에는 양이 좀 과하다 할 정도의 고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고기를 정성껏 구워서 아들을 먹였고, 아들은 엄마가 주는 고기를 한 점, 한 점 맛있게 먹었습니다. 엄마는 식탁 위 음식 중 가위로 자를 수 있는 것들은 가위로 다 잘라 아이가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엄마는 작은 소리로 아빠 이야기, 여동생 이야기, 간호사 이야기랑 의사 이야기를 했고, 아이는 까르르 엄마와 함께 웃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먹었는지 아이가 배가 부르다고 하자, 그제서야 엄마는 굽다 남은 고기를 한 점씩 먹으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 사이에 단체 예약한 손님이 밀어닥쳤고, 그리 시끄럽지 않는 분들이라 다행이었는데, 누군가 인사하자 가볍게 박수를 친 다음, 식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우리 식탁으로 의식이 돌아온 나는 ‘후배 신부 이야기를 어디까지 들었더라….’ 이렇게 생각하던 차에, 모자는 일어나 계산하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음식은 조금 남았지만, 그래도 아들이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가 아픈 것이 엄마는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엄마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났습니다. 때마침 고기 숯 연기가 내 쪽으로 와서 망정이지. 훌쩍!

단체 손님을 맞이하던 종업원들이 틈을 내어 옆 식탁을 치웠습니다. 그러면서 종업원들은 나지막한 소리로 ‘오늘은 그 엄마 아들이 좀 먹었네!’ 그러다 다른 분이 한숨을 쉬며, ‘안됐지, 뭐! 갈 사람은 가는 거고, 남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지.’

돌아오는 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만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마지막 만찬이었다면 그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한 만찬이라, 엄마의 사랑은 영원히 잊지 못하겠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