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56) 사춘기 자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10-14 수정일 2014-10-14 발행일 2014-10-19 제 2915호 1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살아야 할 기쁨을 주었기에
평소 부족한 나에게 인생의 많은 도움을 주는 어느 교수님 이야기입니다. 그 교수님은 학문적으로 성실함과 진지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적으로는 겸손하고 온유함을 느끼게 해 주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뿐 아니라, 그 분을 아는 주변 분들은 그 분을 처음 만나게 되는 순간에서부터 그 분이 보여주는 따스한 예절과 잔잔한 성품에 많은 감동을 받고, 기분마저 좋아집니다.

가끔 함께 모임을 갖는 연구회에서 문화 답사나 혹은 1박 2일로 여행을 갈 때면 해박한 지식과 즐거운 대화로 우리의 여정을 즐겁게 해 줍니다. 그러면서도 조용한 시간에 드러나지 않게 문자로 아내에게 자신의 현재 상황을 꼬박꼬박 알려주는 자상함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곁눈질로 엿볼 때마다, 일상의 시간을 배우자와 공유하는 부부는 그 자체로 식을 줄 모르는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살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교수님은 그날따라 아무런 이유 없이 내 사무실에 차 한 잔 마시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반가움을 나누며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자녀분은 별 탈 없이 잘 크고 있는지’를 묻는 나의 질문에 교수님은 한숨을 쉬며, 최근 들어 자신의 아내와 아들이 조금 갈등 관계에 있어서 속상하고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수님 마음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은근히 한 마디를 거들었습니다.

“교수님, 어릴 때 그 귀엽고 예쁜 자녀들이 이제 커서 사춘기 즈음 되면 키우기 정말 힘드시죠? 특히 반항심 가득한 그 아이들이 가끔 부모에게 대들며 ‘나를 이렇게 키울 거면 왜 낳았느냐!’ 따지기까지 하면, 그 땐 정말 속상해 죽겠죠?”

그러자 교수님은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아니랍니다, 신부님. 저는 그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나는 10여 년 동안 무척이나 행복하게 지낸 사람입니다. 그 아이는 크는 동안 하루하루, 나에게 사는 기쁨을 주었고, 또한 내가 성실하고 부지런히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 준 아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아이가 좀 사춘기라고, 아니 반항 좀 한다고, 아빠나 엄마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를 한다고 해서 정말이지 힘들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사춘기는 어쩌면 사춘기를 겪는 그 아이로 인해 우리 부모를 정녕 부모답게 만들어 주는 그런 과정 같아요. 그러기에 그 시간 또한 내가 그 아이의 부모가 되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여정이고, 내 아이로 인해 나와 내 아내가 앞으로 좋은 부부가 되어가기를 다짐하며, 노력하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춘기 내 아이는 내가 앞으로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좋은 마음을 갖고, 좋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재미없었습니다. 나의 순간 잔머리는, 교수님 자녀의 흉을 보면서, 교수님 마음을 위로해 드리면 결국 교수님으로부터 후한 마음의 점수를 따 볼까 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격이니! 그러면서 자신의 아이가 요즘 무시무시한 ‘중2’가 되었다고, ‘사춘기’라고, 반항하고, 대들고, 부모 말을 안 듣는다고 씩씩거릴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나 순간이 어쩌면 준비 안 된 그 아이의 부모들을 더 좋은 부모 만들어 주려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상황과 관계를 뒤집어 보고, 반대로 거꾸로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네요, 하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