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59)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건!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11-04 수정일 2014-11-04 발행일 2014-11-09 제 2918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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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묵상
오늘 아침, 신문 방송을 통해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한 채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슬픈 소식을 접했습니다. 왠지 답답한 마음의 내 방 창문을 열었더니, 계절이 늦가을로 향해 가고, 은행나무 노란 잎들이 바람에 비처럼 흩날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는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싶었습니다.

점심 즈음 인근에 사는 후배 신부님이 내 사무실에 볼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냥 하던 일을 좀 접고, 동네 산책을 함께 하였습니다. 울적하게 생각하면 하염없이 울적한 날씨지만, 산책하며 걷기에는 참으로 맑고 좋은 시월의 끝자락 오후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예쁜 문구를 따라 걸어가면서, 좁고 굽은 그래서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 것 같은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구불거리는 길을 지나면서 이 길이 우리네 인생을 닮은 것 같았습니다. 집과 담의 경계도 없이 그저 꼭 붙어있어, 부대끼며 살아가는 듯한 동네를 보면서, 왠지 정겹기까지 했습니다.

어느덧 걷다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단풍이 들어가는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후배 신부님이 나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며칠 전에 젊은 수녀님 한 분이 선종하셨대요. 그런데 임종 직전에 그 수녀님은 부모님과 가족들을 불러서, 하느님 안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동창 수녀님들에게는 얼굴을 좀 깨끗이 씻어 달라고 했대요. 그렇게 얼굴을 깨끗이 씻은 후에 그 길로 하느님께 가셨다고 하더군요.”

나는 젊은 수녀님의 선종 소식이 안타까워, 어느 수녀회 수녀님인지를 물었더니,

“저도 잘 아는 신부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라 잘은 몰라요.”

“마음이 좀 슬프고, 아프네!”

“그런데 수녀님은 자신이 몸담았던 수녀원에서는 아주 평범하게 사셨나 봐요.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아주 평범하게.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다가 젊은 나이에 조용히 하느님 품에 안기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수녀님의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수녀님을 아는 수녀회 모든 수녀님들이 안타까워하면서도, 편안한 미소를 지으셨다고 해요. 너무나도 평범했기에 그 수녀님의 선종 소식이 다른 수녀님들에게 작지만, 큰 울림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생각해보면, 평범한 삶을 사는 분들이 남기고간 평범함이 진정 모든 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미소 짓게 하는 감동의 삶인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수도생활을 통해 모든 것을 다 버린다고 하지만, 내심 그다지 평범하게 사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머리로는 평범함을 산다지만, 몸과 마음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 특별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수도 생활이 늘 힘든 것 같아요.”

죽음은 죽어가는 당사자나,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슬픔’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뒤섞인 그 무엇입니다. 특히 이승의 삶이 영원 속에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잊혀지는 것 때문에 더 힘들겠지요. 하지만 이승의 삶이 그분과 영원히 함께하는 여정의 한 구간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죽음조차, 그저 ‘오늘 하루 맞이해야 하는 평범한 하루 일과라고 생각하겠구나!’하는 묵상을 해 보게 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