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09) 과소비를 섭리로 이끄신 하느님 (1)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11-10 03:50:00 수정일 2015-11-10 03:50:00 발행일 2015-11-15 제 2969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덕을 닦고, 덕을 실천하는 삶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하기는 어렵습니다. 혼자 갈고 닦았다는 덕이, 때로는 타인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느님 섭리에 따라 덕을 닦고, 덕을 실천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완성해 주십니다. 특히 수도생활이 그렇다고 합니다.

어느 수도원 수사님의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그 수사님은 예전에 자신이 소속된 수도회의 신학원 경리 담당자, 다시 말해서 살림 담당자로 발령을 받은 적이 있답니다. 수도회에서 신학원은 이제 갓 수도회에 입회한 형제들과 신학교를 다니는 신학생 형제들이 일상생활 안에서 청빈의 삶을 배우고 그것을 몸이 터득하도록 익히는 곳입니다.

또한 신학원은 한 달 단위로 수도원 총원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를 가지고 신학원 형제들과 노력해서 아껴 쓰면서도 궁색하지 않고, 규모있게 살림을 살면서도 모자라지 않으며 써야 할 비용은 쓰면서도 불필요한 지출에 대해서는 신학원의 형제들과 알아듣기 쉽게 대화로 풀어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소임입니다.

그러다보니 경리 담당자는 우선 본인 스스로 경제적인 면에서는 ‘돈’에 대해서 검소하게 사용함으로써 청빈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그 수사님은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일거수일투족, 어린 형제들이 청빈을 배우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기에 당시 신학원 경리 담당자 소임이 늘 마음의 짐이었답니다.

또한 당시를 회상할 때 참으로 고마운 것은 빠듯한 신학원 살림을 알고 있던 주변 분들이 크고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이었답니다. 때로 그분들이 유통 기간이 아주 ‘쬐끔’ 지난 과자나 유통기간이 ‘간당간당’한 빵 그리고 여기저기서 과일이나 그 밖의 생필품을 선물로 주실 때면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함께 들었답니다.

수사님의 일과 중 하나는 15명의 신학원 학생들에게 검소한 식단과 행복한 식사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시장을 가는 것입니다. 어느 날, 그 수사님은 시장에서 2+1 기획 상품인 소시지를 사면 선물로 또 하나의 소시지를 더 주는 코너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2+1 상품이 싸다는 것과 한 개를 덤으로 주는 것을 알고, 조금은 과소비인 것 같지만 그래도 ‘절약’이라는 명분하에 몇 묶음을 더 사서 수도원 냉장고에 두었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주간 주변 분들이 너무 많은 반찬거리와 과일, 심지어 돼지고기까지 들어왔답니다. 그래서 그 주간을 잘 먹으며 지냈는데, 그 후 수사님이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지난번에 샀던 소시지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덤으로 받은 소시지는 유통이 지났고, 음식을 만들려고 껍질을 벗겨 놓은 소시지에는 곰팡이가 난 듯 보였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수사님은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상한 소시지를 야외 냉장고에 치운 후, 저녁 식사 시간에 형제들에게 공지를 했답니다.

“형제님들. 바깥 냉장고에 물건을 놓아둔 것이 있으니, 손대지 마셔요.”

수사님은 형제들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음식 관리를 잘못해서 소시지가 상해 버려야 한다는 것을 형제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은 살림 담당자로서 식욕이 왕성(?)한 형제들을 잘 달래가면서, 예모답게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날 시장에서 2+1에다가 한 개를 덤으로 준다는 과소비를 부추기는 말에 넘어간 자신의 부끄러움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