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원장 소임을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낡은 화장실과 강당을 새로 공사를 했는데, 공사비용을 절약하는 차원에서 설계와 감독까지도 건축 설계를 맡아주신 분이 직접 해 주었습니다. 그 현장 감독은 여성분이셨는데, 수도원 일은 처음으로 한다면서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공사를 맡아주셨습니다. 작업 현장에서는 매의 눈을 가진 날카로운 분이시지만, 평소 우리와 대화할 때에는 무척이나 자상한 자매님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사 감독님이 슬픈 얼굴빛으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었습니다.
“선생님, 오늘 얼굴이 안 좋으신데, 몸이 불편하셔요?”
그러자 공사 감독님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아니에요, 신부님. 그냥 좀…. ”
“아니긴요, 힘들어 보이는데. 우리 식당에서 차 한잔해요.”
잠시 짬을 낸 우리는 식당으로 가서 차를 마셨습니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데, 감독님은 참 좋은 엄마이면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분에게는 자녀가 둘 있는데, 그중에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면서 반장이랍니다. 그런데 전날 공사 감독님이 작업 끝내고 집으로 갔더니 시무룩한 표정의 아들이 책상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를 물었더니, 그날 오전 학교에서 운동회를 했는데 반 학생 중 한 명이 갑자기 운동장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고 안타깝게도 그 날로 하느님 품으로 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답니다.
그 말을 듣자 그분은 아들을 꼬-옥 안아 주었고, 아들은 눈물을 글썽글썽했답니다. 늦은 밤까지 아이 마음을 다독여주었고, 다음 날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보고 공사 현장으로 왔지만 계속 마음이 불편했답니다. 특히 하느님 품으로 간 아이는 자신의 아들과 과외까지 같이 하는 아이라서 더 마음이 쓰였던 것입니다.
나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죽음에 대해서 그 어떤 분명한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창밖만 바라보며 하느님 품으로 해맑은 표정으로 가는 그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죽음, 어느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슬픈 운명! 그 다음날 공사 감독님은 한결 밝은 표정으로 현장에 나왔습니다. 나는 그분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신부님, 우리 아이가 저보다 훨씬 낫더군요.”
“선생님 아들이라면, 오늘 그 친구 장례일인데 힘들어하지 않던가요?”
“그럴 줄 알고, 저도 울적한 마음으로 어제 집에 들어갔더니 오히려 활짝 웃는 표정이었어요. 그래서 무슨 일 있었는지를 물었더니, 아들은 자기 저금통에서 돈을 꺼내서 국화를 사가지고 병원 영안실 가서 친구 조문을 하고 왔대요. 그리고 하는 말이, ‘엄마, 사람이 살고 죽는데 순서가 없는 것 맞지?’ 하면서, 자기는 오늘 하루 종일 죽은 친구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대요. 그래서 그 친구처럼 자기도 열심히 살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어제 가기 싫은 과외도 갔다 왔대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5학년 된 우리 아들이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어요!”
감독님 아들의 말은 어린 나이에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 의젓한 대답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죽음에 대한 이해 방식은 나이와 연륜, 의젓하고 안 의젓하고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그 자체로 혼신을 다해 이해하고, 터득하고, 받아들이는 그 무엇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