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15) 형, 대림이 뭐야?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12-21 수정일 2015-12-21 발행일 2015-12-27 제 297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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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출장 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제주 공항 입구에서 어느 교구 신부님 한 분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 신부님은 내가 수도회 사제로 사는 동안 언제나 힘들 때마다 큰 힘이 되어 준 신부님으로 무척 오랜만에 본 것입니다. 그 신부님은 교구에서 사제 연수를 끝내고 잠시 쉬는 시간을 내어 제주도의 구석구석 2주 동안 다니면서, 제주의 자연을 묵상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슬슬 피곤해서 시간 보다 일찍 서울에 갈 생각으로 예정 시간보다 빨리 제주 공항에 도착해서 표를 바꿀까 생각 중이었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반가운 나머지, ‘괜찮다면 같은 비행기로 서울로 가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기꺼이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항공사와 비행기 표 시간을 바꾼 후 우리는 제주에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 출국장으로 갔습니다. 그런 다음, 신부님과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데, 신부님이 대뜸,

“강 신부, 좀 따라올래!”

그러면서 면세점에 가시더니 남자 화장품 코너에서 성탄 선물로 로션 하나를 사주셨습니다. 겸연쩍게 머리를 긁었더니, 겨울에 로션 정도는 발라 주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비행기를 탔고, 우리는 나란히 좌석에 앉았습니다. 그 후 나는 신부님의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주도에는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는 많은 비경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 동안, 나는 신부님에게 대뜸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형, 요즘 우리가 대림 시기를 보내는데 형에게 대림은 무슨 의미가 있어?”

그 신부님은 잠깐 구름 가득한 하늘 위, 저 멀리 노을빛이 구름 위를 비추는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응, 대림! 그건 나에게 주제를 파악하는 시간이야, 주제!”

“무슨 주제?”

“어떤 주제가 아니라,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시간인 거지. 한 마디로 주제 파악을 하는 시간이야. 우리는 살면서 상대방에게 관계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하고, 결정함에 있어서 주인이 되고 싶어 하고, 사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향까지도 주인이 되고 싶어 하잖아. 그러면서 겉만 높아진 주인들의 삶은 결코 기다리지 않지. 자기가 높은 사람, 대단한 주인이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들을 하찮게 보면서, 기다리게 만들잖아. 그런데 마음 낮은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지. 그래서 대림은 내가 지금 주인 흉내를 내고 있는지, 아니면 진짜로 낮아진 마음으로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라 생각해.”

“와, 대림과 관련된 좋은 묵상 거리다, 묵상 거리. 주제 파악하는 시간! 특히 지금 내가 주인 흉내를 내고 있는지, 아니면 낮은 사람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는 시간!”

비행기는 높은 구름 위를 노니는 듯, 살포시 거니는 것처럼 그리 천천히, 하지만 무척 빠른 속도로 가고 있었습니다. 구름바다 맨 끝자락, 노랑이라고나 할까, 주홍빛 색깔들이 주변을 비추고 있었고, 그 장면이 자연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신부님은 내게,

“가장 낮은 사람, 바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내가 지금 가장 낮은 사람의 삶을 사는 것, 바로 그것이 대림인 것이지.”

신부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구름이 빚어내는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는 하느님 생각에 가슴이 좀 미어졌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