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16) 게으름과 민폐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12-28 수정일 2015-12-28 발행일 2016-01-01 제 297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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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는 걸 싫어하는 신부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얼굴이나 눈에 보이는 피부는 아무 이상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피부 관리를 받으러 다니는 신부로 오해받을 정도로 하얀 피부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하나 있었답니다. 그것은 발톱 무좀에 걸린 것입니다. 처음에 엄지발가락 발톱이 새까맣게 변하는 것을 보고 신부님은 겁이 났는지 본당에 피부과 간호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병원에 가서 무좀 검사를 받았답니다. 그랬더니 발톱 무좀 판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약국에서 두 달 치 약을 탄 후, 사제관으로 돌아와 그 약봉지를 책상 위에 놓고 한숨만 쉬었답니다. 무좀인데 웬 한숨이냐면, 의사로부터 ‘매일 발을 깨끗이 씻고, 발전체를 잘 말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틈틈이 전화로 코치하는 본당 피부과 간호사의 말을 들으며 처음에는 아침, 저녁으로 씻고, 약도 발랐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가 지나도 차도가 보이지 않자 게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먹는 약도 빠트리고, 바르는 약도 바르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답니다. 그렇게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본당의 피부과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 두 달이 되어, 병원 오셔서 진료받고, 약을 타셔야 하는데 언제 오실래요?”

순간, 신부님은 바르는 약 안 바르고, 약도 남은 것이 탄로 날까 봐,

“자매님, 제가 요즘 많이 바쁜데, 혹시 대신 약 타주시면 안 돼요?”

자매님은 신부님이 바쁘다는 말에 그 다음 날, 근무하는 병원 가서 신부님의 ‘가족’으로 처방을 받아 약을 타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두 달이 흘렀습니다. 이때에도 어김없이 본당의 피부과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 또 두 달이 다 되었는데, 차도는 어떠세요?”

순간, 또 마음도 찔리고 양심도 찔린 신부님은,

“잘 안 낫는데요, 어떡하죠?”

“신부님, 발톱 무좀은 잘 안 나아요. 그래서 인내가 필요해요. 약은 다 드셨죠?”

“아뇨, 조금 남았는데! 이번에도 좀 타주시면 안 되나요?”

“신부님, 이번에도 약을 타 드리고 싶은데, 지금 드시는 약이 간에 이상을 주나 안 주나, 피검사를 해야 돼요. 그래서 이번에는 병원에 꼭 오셔야 해요.”

할 수 없이 신부님은 적당한 날짜를 잡아서 병원에 갔고, 본당 피부과 간호사를 만나 피검사를 먼저 한 후 진료실로 가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진료실 안에 들어갔는데, 처음 만난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처음 의사는 레지던트였고, 지금 의사가 피부과 의사였답니다. 그런데 그 의사 선생님이 간호사 얼굴을 한 번 보고, ‘간호사 가족’이라고 쓴 글을 보더니, 그 신부님에게,

“남편 되시는군요. 지난번, 병원 오기도 바쁘셔서 우리 간호사분이 대신 진료를 받고, 약 타가셨는데. 남편분 좀 게으르시죠? 암튼 남편을 위해 우리 간호사께서 얼마나 정성스럽게 진료 차트를 확인하는지, 참 좋은 아내예요.”

순간 그 신부님은 그 간호사의 남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간호사는 ‘게으르다’는 말에 ‘신부님’이라고 소개도 못하고 얼굴만 붉어졌답니다. 그 후, 신부님은 병원을 옮겼고, 잘 씻고(?), 부지런히 무좀 치료를 해서 좀처럼 낫지 않는 발톱 무좀, 완치 판결을 받았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다시는 자신의 게으름 때문에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