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33) ‘축하합니다. 당신의…’ (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5-03 수정일 2016-05-03 발행일 2016-05-08 제 2993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4월 언제인가, 정신없이 한 주간을 지내다보니 어떤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신학교 다니는 형제들과 만나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그 약속 날 아침 중복된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헐레벌떡 형제들과 만나기로 한 신학교 정문 앞,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세 명의 형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뭔가 음흉한 계획이 있는 듯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암튼 오랜 만에 형제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대뜸 어떤 형제가 하는 말이

“강 신부님, 혹시 오늘 뭐 드시고 싶은 것 있으셔요? 저희들이 대접하고 싶은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아하, 형제들이 평소 용돈이 부족하니, 나를 만나 밥을 사주겠다고 식당에 데려간 후, 신나게 먹고 난 후 계산서를 나에게 주겠지! 이그, 언제 적 수법인데….’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아냐, 내가 오늘 맛있는 것 사줄게. 형제들 뭐 먹고 싶어?”

“아녜요. 요즘 수도원 일로 수고가 많으신데, 오늘은 저희들이 한턱 쏠게요!”

나는 마음 속으로 ‘에이, 내가 모를 줄 알고…. 음, 싸고 양 많은 곳, 분식 집 가서 먹으면 되겠다, 히히’ 그리고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 OOO역 근처 떡볶이 잘하는 집이 있는데 거기 가서 신나게 좀 먹을까?”

나의 분식집 제안에 형제들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분식집이면 되시겠어요? 아닌데, 더 맛있는 것 사드릴 수 있는데!”

나는 속으로, ‘안 속는다, 이 녀석들아. 분식집 가서 신나게 먹자, ㅎㅎㅎ’ 우리는 신학교 정문에서부터 수다를 떨면서 분식집으로 갔습니다. 당시 시간은 오후 4시 30분. 배가 고플까, 말까, 하는 시간이라 형제들이 뭘 그렇게 많이 먹겠나 싶었습니다.

분식집은 좁게 앉는 것이 매력이라, 작은 공간에 우리 네 사람은 몸을 ‘꼭-’붙이며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형제 한 명이 나에게 차림표를 주며 말했습니다.

“강 신부님, 먹고 싶은 것 마음껏 골라 보세요.”

그래서 나는 어차피 내가 살 거니까 싶어서, 형제들에게 장난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마음껏 고른다. 음, 우선 참치김밥 4줄에 떡볶이 4인분, 순대 1만 원어치에 튀김 1만 원어치, 어묵이랑 튀김 만두 세트, 그리고 쫄면 하나, 치즈라면, 오케이?”

순간 형제들은 환하게 웃었는지 놀라서 웃었는지 모르지만, 그만 입을 벌리며 웃었습니다. 이를 눈치 챈 나는,

“그러니까 나에게 고르라고 말하지 말고, 형제들이 먹고 싶은 거 골라 봐! 내가 사줄게.”

나는 형제들이 알아서 주문하겠지 싶어서,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런 다음 때마침 중요한 전화가 걸려와서 분식집 밖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식집 안에서 주인 아주머니랑 아저씨의 손길이 갑자기 무진장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인근 학교의 학생들 수업이 끝날 시간이라 학생들이 때문에 그런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음식이 우리 식탁으로 배달되는 듯 했습니다. 나는 전화하다말고, 그 상황을 보며 놀란 나머지, 상대방에서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말한 후에 분식집에 뛰어 들어가서 형제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이, 정말 내가 좀 전에 장난치듯 주문 한 것 다 시켰어? 그거 장난 친 거야.”

때는 늦었습니다. 좁은 식탁 위에 참치김밥 4줄에 떡볶이 4인분, 순대 1만 원어치, 튀김 1만 원어치, 어묵이랑 튀김 만두 세트, 그리고 쫄면 하나, 치즈라면 하나가 풍성하게…,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헉….’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