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35)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었을 텐데 (1)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5-17 수정일 2016-05-18 발행일 2016-05-22 제 2995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지난 몇 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순례에 관심 있는 분들과 주제가 있는 성지순례를 다니고 있습니다. 올해는 ‘교우촌에서 핀 웃음꽃’이라는 주제로 교우촌을 찾아나서는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를 선정한 이유는 박해시기에 하느님 신앙을 실천하고자,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살았던 우리 신앙 선조들의 애잔한 그 마음을 묵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조선 후기 그 당시에 산속 생활은 천주교 신자를 체포하려는 포졸의 위협뿐 아니라 사나운 야생 동물의 위험과 공포 또한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 하루를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기도 안에서만 살았던 신앙 선조들의 그 마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려오는 듯합니다.

지난번, ‘교우촌에서 핀 웃음 꽃’이라는 주제로 순례를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선정한 교우촌 주변에는 순례를 잘 할 수 있는 성지가 있었고, 우리 목적지는 그 성지 뒤에 있는 큰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교우촌이었습니다. 주변에 순례를 잘 할 수 있는 성지는 과거에 여러 번 찾아간 적이 있는 익숙한 성지입니다. 또한 성지 주변 지형은 인터넷을 통해 잘 나와 있었고, 고맙게도 인터넷 블로그에서 우리가 가려는 교우촌을 다녀간 분들이 자신의 순례 여정을 소개하면서 정보를 공유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답사조차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 곳 순례 신청을 할 때, 성지 담당자 분이 안내봉사자가 필요한지를 물었을 때에도 나는 당당하게 자체적으로 순례를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순례를 떠나는 날, 아침입니다. 그 날 출발 시간은 새벽 6시였습니다. 나는 인원 확인 때문에 새벽 일찍 모임 장소로 나섰는데, 새벽 공기가 상쾌하고 날씨마저 좋아 마음 한결 편안한 느낌이었습니다. 새벽 5시30분에 목적지에 도착한 후, 인원 점검을 하고나니 거의 출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체 40여 분의 신자들과 출발 기도와 함께 순례지로 떠났습니다. 아침으로 준비한 김밥과 물을 나눈 후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 차 안에서 그 날 순례를 떠나는 곳에 대한 설명과 ‘교우촌의 삶’을 주제로 즉석 강의도 했습니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 순례 일행은 순례 출발 기도를 바친 후 목적지로 걸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씨가 좋아지더니, 구름 한 점 없는 너무나도 맑은 날씨였고, 산길을 걷는데 바람마저 신선해서 기분이 충만해졌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천상에 계신 순교자님들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걷는 것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그날 따라 날씨 탓에 일행 분 들에게 듬직한 순례 담당자로 보이고 싶어 더욱 씩씩하게 걸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30분쯤 걸은 후, 사진으로 본 갈림길이 나와야 하는데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어, 분명히 이 즈음인데…!’ 마음속은 불안해지기 시작하였지만, 겉은 태연하게 두리번두리번 하면서 갈림길을 찾는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가야하나, 싶은 마음에 계속 걸었습니다.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순례 길을 오신 분들은 편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를 중심으로 앞과 뒤에 계셨고, 산길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걸었습니다. 1시간 정도를 더 걸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깊은 산속인지 스마트 폰이 작동되지 않아 인터넷 검색도 되지 않았습니다. 밀려오는 불안과 두려움! 그래서 일행의 걸음을 멈추게 한 후, 스마트 폰이 작동되지 않아, 구형 핸드폰을 가지고 계신 분을 찾아 양해를 구한 후 그곳 성지 안내소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담당 수녀님이 전화를 받으시자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첫 마디가 “신부님, 길을 잘못 드셨어요. 지금 바로 그 곳에 저희 안내 봉사자 보내 드릴게요!”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