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고양이의 보은 / 최영균 시몬 신부

최영균 시몬 신부,제2대리구 호계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2-03-23 수정일 2022-03-23 발행일 2022-03-27 제 328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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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사목하는 성당은 5년 전부터 재개발이 진행된 동네에 있다. 지금은 세련되고 깨끗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재개발 기간 동안 집들이 철거되며 분진과 소음, 공사차량 때문에 성당에 오는 신자들의 불편과 어려움이 상당했다.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마을의 길고양이들도 살 수 있는 집과 공간을 빼앗겨 생존에 위협을 받았다. 그래도 ‘하느님은 살 길을 마련해 주신다’고 신앙인들이 흔히 말하듯이, 하느님은 고양이들에게도 천사를 보내주셨다.

본당 사무실에 근무하는 젬마씨가 고양이 엄마 노릇을 자처했던 것이다. 넓은 재개발 공사 지역에서 안전한 곳은 성당뿐이었는지라, 동네 고양이들은 성당으로 모여들었다. 젬마씨는 매일 물과 사료를 제공했다. 아픈 녀석들은 사비로 약을 사서 치료해주고, 상태가 더 심해지면 병원에도 데려갔다. 고양이들에게 젬마씨는 하느님이었을 것 같다.

어느덧 4년이 지나 새 아파트들은 완공됐고 동네 환경은 정비됐다. 그러나 고양이들에게는 애당초 이주할 새 집이 준비되지 않았다. 그래서 재개발 후에도 여전히 성당은 마을 고양이들의 아파트가 되어버렸다. 나는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명색이 신부인데 매몰차게 쫓아버릴 수는 없어서 고양이를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오후 고양이 식탁으로 사용하는 야외 성모상 앞 데크 한쪽에 죽은 쥐 한 마리가 턱하니 잘 보이게 누워있었다. 그걸 본 교우들이 “꺅!” 소리를 질렀다. 나는 사무실로 달려가 젬마씨에게 말했다. “고양이가 쥐를 물어다 성모상 앞에 놓았어. 어떻게 좀 해봐.” 젬마씨는 징그럽지만 사랑하는 고양이들을 위해 죽은 쥐를 잘 싸서 휴지통에 버렸다. 다음날 성모상 앞 데크에 자그마한 무엇인가가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반쯤 죽었지만 살아 움직이는 쥐였다.

고양이가 왜 저런 일을 벌이는지 궁금했다. 젬마씨는 고마움의 표시라고 했다. 몇 년 동안 길 고양이들을 돌봐준 데 대한 고마움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쥐를 잡아 선물해 주고, 그것을 먹나 안 먹나 숨어서 지켜본다는 것이다. 그것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자, ‘저 친구는 죽은 쥐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생각해서 쥐를 잡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만 손봐주고(?) 산 채로 선물한 것이었다. 황당하지만 참으로 기특하기도 하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느님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드리고, 물질을 봉헌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이 하느님께 필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세기 4장 초입에 하느님은 목동이었던 아벨의 제물은 즐겨 받으시고, 땅의 소출을 올린 카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학자들은 유목민 조상을 둔 이스라엘이기에 농업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기(집회 38,25-26 참조) 때문이라지만,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보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세상의 것은 그 무엇도 필요 없는 분이시지만 그분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즐겨 하신 것이지 않나 싶다. 징그러운 쥐를 물어다 놓은 고양이의 마음씀이 그래서 더 아름답다.

최영균 시몬 신부,제2대리구 호계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