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저를 보내주십시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오기백 신부(하)

박효주
입력일 2024-06-04 수정일 2024-06-12 발행일 2024-06-16 제 3397호 1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다양성 함께 나누고 정의 위해 목소리 내는 것이 곧 선교입니다”

오기백 신부(Daniel O‘Keeffe·74·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낯선 한국 땅에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산 지 49년째. 그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법무부에서 ‘대한민국 올해의 이민자 상’을 받았다. 그가 선교사로 있는 동안 한국교회는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다양성을 위해 선교는 계속돼야 한다는 오 신부. 영성과 선교에 대한 오 신부의 생각을 들어봤다.

신앙과 문화의 대화

1976년 한국에 온 오기백 신부는 1989년부터 1991년까지 2년간 아일랜드로 돌아가 실용 신학을 공부했다. 그때 쓴 논문 제목은 ‘신앙과 문화의 대화’였다. “한국을 예로 들자면, 신앙도 있지만 샤머니즘, 유교, 불교가 모두 문화적 요소로 있잖아요. 사람들이 그런 문화 속에서 에너지를 받더라고요.”

칠월 칠석날 큰 스님이 노동자들을 초청해서 밥도 먹이고 노래도 함께 불러주면 노동자들이 다시 일어설 힘을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게 신앙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이걸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자원으로 쓸 수 있을까’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죠.”

사제를 그만둔 동생을 통해 다양성을 받아들이다

아일랜드에 갔을 때 가족도 만났다. 여동생 넷은 모두 결혼해 조카가 많았다. 남동생은 필리핀에서 활동하던 같은 골롬반회 신부였는데 서품받고 10년째 되던 해에 사제생활을 접었다. 그 이유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라고.

“동생의 파트너를 처음 만났을 때 머리로는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둘이 결혼해서 지금 30년째 너무 잘살고 있어요.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느님께서 이 기회를 통해 나에게 새로운 걸 보여주셨구나 싶었어요.”

둘의 결혼식장에서 오 신부는 느꼈다. ‘하느님 보시기에는 좋지 않은가?’ “교황님 말씀대로 누가 누구를 함부로 판단할 수 있겠어요. 정원에도 똑같은 꽃, 똑같은 나무가 하나도 없어요. 사람도 같다고 생각해요.”

Second alt text
오기백 신부(왼쪽)가 2021년 ‘대한민국 올해의 이민자상’을 수상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

선교사들의 영성 강화 프로그램 시작

오 신부는 1998년에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한국 지부장이 됐다. 2000년을 앞두고 선교사 시스템 변화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다. 골롬반회는 선교회라서 선교에 대해 여러 나라에서의 경험이 많이 있었다. 준비 없이 파견된 선교사들을 보거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제대로 준비를 못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선교사들을 파견하는 데 우리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교사들을 위한 사전 교육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래서 1999년 한 달짜리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시작했지요.” 1984년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앞으로는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파견하는 교회가 되라고 초대하신 그 뜻을 이은 것이다.

‘주님의 기도’에서 배우는 사회 정의

오 신부는 우리가 매일 바치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사회 정의를 설명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런데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가 다 형제들이니까 형제처럼 살아야 하는데 현실을 보면 그렇지가 않아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이 부분은 땅에서 올바른 사회를 위해 아주 구체적으로 노력을 해야만 된다는 뜻이에요. 그런 노력을 안 할 거면 왜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거죠? 물론 인간이니까 모순이 없을 수는 없지만 모순을 축소 시켜 나가야죠.”

하지만 세계적으로 그 모순이 너무도 심하다.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데 한쪽에서는 굶고 있다. “이것을 묵인한다면 우리가 감히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Second alt text
2013년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80주년 기념 미사’에서 당시 선교회 한국 지부장이었던 오기백 신부(앞줄 맨 왼쪽)가 미사를 공동집전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선교는 다양한 복음화 위해 계속 필요

예전의 선교는 교회가 없는 곳을 가서 교회를 세우는 활동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본당이 없는 데도 드물고 세계적으로도 가톨릭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곳도 거의 없다. “지금의 선교 개념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닌 나눔을 하는 것이에요.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다양성을 나누어야 해요.”

문화마다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보고 느끼는 게 다 다르다. 모든 지역교회는 하느님에 대해 역사와 경험에 따른 자기 통찰이 있다. “어떤 분들은 이제 한국교회는 튼튼하니까 선교사들이 필요 없다는 말도 해요. 하지만 선교사는 우물 안의 개구리를 타파하는 역할을 해요.”

지금의 한국교회는 다른 종교들과 조화롭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 같은 경우는 종교끼리 폐쇄적이기에, 한국교회의 선교사가 가면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을 나눌 수 있다고 오 신부는 생각한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여러 전쟁과 엮인 나라이기 때문에 평화 운동이 많이 발전했다. 그래서 한국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있으면 미국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지지한다.

또 한국은 지금 무기 수출이 세계 7위인데 현 대통령은 본인 임기 안에서 4위가 되도록 하겠다며 미국에 무기를 많이 보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평화의 날’마다 메시지를 통해 무기 생산과 수출을 비판하지만, 오 신부가 볼 때 한국교회는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는 이럴 때 다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선교사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느님이 자신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깊이 믿는다는 오 신부. 선교사로서 어려운 여정을 이어 왔지만 현재 행복하다고 전했다.

“여러분에게 선교사의 삶에 도전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참 보람 있는 생활입니다.”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