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특집]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 31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실무안을 공개했다. 향후 15년(2024~2038년)의 전력 수요 전망과 발전소 건설 계획 등을 담고 있는 실무안은 2038년 최대 전력수요를 129.3GW로 전망하면서 설비를 157.8GW까지 늘리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 안에는 대형 원전 3기·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등 4기 추가 건설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실무안이 발표된 뒤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사회교리실천네트워크 등이 포함된 223개 시민·환경단체는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을 맞아 지난 6월 8일 ‘다시 타는 밀양희망버스’를 출발시켰다. 행사에 모인 1500명의 시민들은 ‘신규핵발전소 건설,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석탄화력발전소 등 초고압 송전탑을 확대하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폐기’를 촉구했다. 전기를 전달하기 위한 송전탑 건설로 희생된 밀양주민들을 아픔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 무탄소에너지 70% 달성의 이면
전기본은 2038년 최대 전력수요를 반도체 산업과 AI 데이터센터, 전기화 수요 등의 증가 요인을 반영해 129.3GW로 산정하고 있다. 설비는 157.8GW까지 늘리겠다는 게 실무안의 요지인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8년 추산되는 확정설비 147.2GW에 10.6GW가 추가로 필요하다. 전기본 실무안에는 “첨단산업, 데이터센터 등 전력수요 변화요인을 체계적으로 반영하고 검증 가능한 수요관리 수단을 도입함으로써 미래 수요를 최대한 과학적으로 전망했다”며 “공급에 있어서는 무탄소전원의 큰 축인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 있는 확대를 도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늘린다고 밝힌 가운데, 구체적으로 태양광은 2022년 21.1GW에서 2038년 74.8GW로, 풍력은 1.9GW에서 40.7GW로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석탄 발전량은 2030년 111.9TWh(17.4%)에서 2038년 72TWh(10.3%)로 줄어든다. 전기본은 “2038년에는 신규원전이 진입하고 수소발전이 보다 확대되는 한편,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발전도 대폭 증가하면서 23년 40%에 못 미쳤던 무탄소에너지(CFE)의 비중이 70%에 달하여 본격적인 무탄소에너지 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정부, 전력수급기본계획 발표
석탄 줄이고 재생에너지 늘려
무탄소에너지 70% 약속했지만
핵발전소 확대도 포함돼 논란
무탄소에너지가 확대된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탄소중립으로 가는 여정에 핵발전소가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것에 환경시민단체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핵발전은 이미 건설계획이 확정된 4기(새울 3·4호기, 신한울 3·4호기) 외에 SMR 실증 원전(0.7GW) 1기와 최대 3기(4.2GW)의 대형 핵발전소 건설이 제시됐다. 계획대로라면 핵발전 비중은 2030년 31.8%에서 2038년 35.6%로 상승한다. 이밖에 2038년에는 신재생 32.9%, LNG 11.1%, 석탄 10.3%, 수소·암모니아 4.4% 등의 전력믹스를 예상하고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총괄위원장인 정동욱 중앙대 교수 “재생에너지를 제외한 무탄소 전원 중 가장 경제적이라고 평가되는 대형 핵발전으로 충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개된 실무안을 바탕으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포함한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정부안을 마련하고, 전기사업법에 따른 공청회, 국회상임위원회 보고 등을 진행한 후 전력정책심의회의 심의를 통해 제11차 전기본을 확정할 계획이다.
■ 누군가의 눈물로 만들어진 전기
제11차 전기본을 규탄하는 밀양희망버스는 송전탑이 줄지어 있는 밀양과 청도 일대를 달렸다. 이들은 “국가폭력에 대한 반성 없이 핵발전소와 초고압 송전선로 인근 주민들의 희생을 계속해서 강요하는 전력수급 시스템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며 “에너지 생산, 수송, 소비에 걸친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핵발전소 확대로 무탄소에너지 70%를 달성한다는 계획의 이면에는 과연 장밋빛 전망만 존재하는 것일까?
주교회의가 발간한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에서는 핵기술이 생명권과 환경권을 어떻게 침해하고 있는지 밝히고 있다. 특히 핵연료 냉각을 위한 온배수 다량 방출, 남는 전기 발생으로 인한 에너지 과소비와 낭비, 대형 송전탑 세우는 과정에서의 환경훼손,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환경유해물질 등이 결과적으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시킨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핵발전소를 세우고 전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한 구조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한다.
핵기술, 생명권과 환경권 침해
핵연료 처리 과정서 공해 발생
외곽서 도심으로 전기 옮기며
가난한 이들 오롯이 피해 입어
“핵발전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 그 풍요로움이 자본과 결합한 일부 사람들의 권리를 실현시켜 줄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인류와 더 나아가 미래의 세대는 그 풍요로움에서 배제돼 있다.”(120항)
“핵산업과 관련된 법률은 발전 사업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시장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독점 사업에 가까우며 사법 체계는 이익과 공통의 공정한 분배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죄의 구조로 전환될 위험성이 높다”(141항)
월성핵발전소 제한구역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주민 황분희씨는 “피해를 주는 사람도 피해를 주는 회사도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책임지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며 “다른 지역에서 쓸 전기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희생과 우리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지금의 현실이 황망할 따름이다”라고 밝혔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