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순례, 걷고 기도하고] 대전교구 해미순교자국제성지

이승환
입력일 2024-08-19 수정일 2024-08-21 발행일 2024-08-25 제 340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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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시기 수많은 이 순교한 생매장 순교터와 묘 함께 있는 곳
한국교회 최초이자 유일의 국제성지…올해 디지털역사체험관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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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내 호야나무. 박해시기 병영의 군사들은 잡혀 온 신자들을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 이승환 기자

충남 서산 해미읍성. 매년 10월이면 축제로 들썩이는 관광지이지만 한편으로 조선 박해시기 내포 지역의 수많은 신자가 잡혀 와 고통받은 자리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1000여 명의 믿는 이가 목숨을 잃었다. 그때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읍성 남문을 지나 마주한 성안은 평온하다. 저 멀리 다른 나무보다 몇 배 키 큰 나무가 보인다. 학명으로는 회화나무, 충청도 사투리로 ‘호야나무’다.

300년 넘은 거목은 박해가 한창이던 그때도 저 자리에 서 있었다. 안내문은 이 나무가 감내한 박해의 아픔을 소개한다. ‘옥사에 수감된 신자들을 끌어내 동쪽으로 뻗어있던 가지에 철사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했으며 (지금도) 철사가 박혀 있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나무 곁 옥사에는 관광객들의 병영 체험을 위해 들여놓은 목칼과 형구들이 놓여 있다.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읍성 밖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1868년 5월. 충남 홍주 출신 박 요한과 그의 장모 문 마리아도 옥사에서 끌려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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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매장터를 향하던 순교자들의 모습을 담은 조각. 기념관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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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관한 디지털역사체험관. 서산지역 소개, 순교자를 배출한 배경과 내포 신자들의 모습, 빛의 세계를 표현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성지를 찾는 타종교 신자들과 젊은이들을 배려해 성지, 지역 소개와 함께 일반작품들도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이승환 기자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신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그리고 그제도 옥을 나선 동료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나무에 매달려 매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서문 밖에서 참수치명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참수도 마땅치 않다며 사지를 들어 돌에 메치는 자리개질로 죽임을 당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계속 서쪽으로 걷기만 했다. 돌다리 아래 바위는 ‘이름 모를’ 이들이 흘린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박 요한이 가만히 성호를 그었다. “기다리시오. 그대들을 따라가렵니다.”

해미천을 건너서야 행렬이 멈췄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구덩이.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예수 마리아 우리를 돌보소서.” 그는 누가 밀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구덩이에 몸을 던졌다. 모두 용기를 냈다. “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 귀신 들린 놈들이라 혀를 차며 포졸들이 외쳤다. “성교(聖敎)를 버린다 해라. 그러면 풀어주마, 살려주겠다.”

박 요한의 차례였다. 구덩이에 들어가 선 채 두 손을 모았다. “천주님 버리고 구차하게 목숨 건져 무얼 한단 말이오? 죽이시오.” 머리 위로 흙이 쏟아졌다. 생매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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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순교자국제성지 입구 전경. 해미는 한국 최초이자 유일의 교황청 승인 국제성지다. 이승환 기자

“이름 없이, 이름 없이”

대전교구 해미순교자국제성지. 처형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던 이들은 ‘예수 마리아’라는 순교자의 외침을 ‘여수머리’라 들었고 이곳은 ‘여숫골’로 불렸다. 박 요한처럼 이름을 남긴 순교자는 132명.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수천의 무명 신자들이 생매장당한 터에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성전이 세워졌다.

화강석으로 외형을 갖춰 읍성의 이미지를 재현한 성당에는 생매장터를 형상화한 둥근 모양의 대성당과 소성당, 디지털역사체험관이 들어서 있다. 대성당과 다리로 이어진 높다란 탑은 팔각이다. ‘진복팔단’의 말씀 그리고 교회를 지켜주시는 파수꾼인 주님을 상징한다.

대성당과 탑을 잇는 다리를 지붕 삼아 걸으면 왼편으로 성지 기념관, 오른편으로는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진둠벙’이다. 생매장마저 번거롭다고 여긴 포졸들은 개울 한가운데 둠벙(웅덩이)에 빠뜨려 신자들을 죽였다. 죄인둠벙이라는 단어가 변해 진둠벙이 됐다. 진둠벙 곁에는 신자들의 팔과 다리 하나씩을 잡고 동시에 들어 떨어트려 처형했던 ‘자리개질’에 썼다는 그 자리개돌이 놓여 있다.

물에 몸을 반쯤 담근 채 두 손을 모은 순교자 상의 모습을 바라보며 당시의 처참했던 순교의 현장을 떠올린다. 2014년 이곳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도 진둠범 앞에 한참이나 머물고 기도하며 “이름 없이, 이름 없이”를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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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둠벙에 몸을 반쯤 담근 채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바라보는 순교자상. 생매장마저 번거롭다 여긴 포졸들이 개울 한가운데 둠벙에 빠뜨려 신자들을 죽였다. 죄인둠벙이라는 단어가 변해 진둠벙이 됐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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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에서 순교한 인언민, 이보현, 김진후 순교 복자의 동상.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17일 해미를 방문해 해미 순교복자 3위 시복 기념비 제막식도 가졌다. 시복 기념비는 기념관 앞에 세워져 있다. 이승환 기자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진둠벙 맞은편은 커다란 무덤 모양의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유해참배실이다. 생매장터를 향하던 순교자들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 순례자를 먼저 맞이한다. 기념관을 한 바퀴 돌아 유해참배실에 이르렀다. 순교자들의 유해 너머로 양반과 상민, 여인과 아이 그리고 노인, 지위고하를 떠나 한 신앙을 향해 하늘로 오른 순교자들의 조각이 천사들이 떠받친 구름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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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7일 성지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지 기념관 내 유해참배실을 찾아 무명 순교자들의 유해를 바라보고 있다. 해미순교자국제성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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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내 유해참배실. 양반과 상민, 여인과 아이 그리고 노인. 신분과 지위를 떠나 하나의 신앙을 향해 하늘로 오른 순교자들의 조각이 천사들이 받친 구름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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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순교자국제성지 전경. 성지로는 드물게 생매장 순교터와 묘가 함께 있는 곳으로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함께 묵상할 수 있다. 이승환 기자

◆ 순례 길잡이

해미순교자국제성지(www.haemi.or.kr, 충남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는 한국교회 최초이자 유일의 국제성지로 교황의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해미천을 따라 2만8400여㎡의 부지에 조성된 성지에는 대성당과 소성당, 진둠벙과 자리개돌, 무명순교자 묘와 순교탑, 복자상 등이 자리하고 있다. 순교자의 무덤을 형상화한 원형 모양의 성지 기념관에는 순교 당시 모습을 담은 조각과 판화, 성지에서 발굴된 순교자 유해가 안치돼 있다.

올해 문을 연 디지털역사체험관은 내포의 꿈과 역사를 기억하고 현대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 역사와 문화를 전달하는 공간이다. 서산 지역 소개, 내포 신자들의 모습과 순교의 역사, 빛의 세계를 최첨단 기술로 표현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성지를 찾는 타종교 신자들과 젊은이들을 배려해 성지·지역 소개와 함께 일반작품들도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17일 해미를 찾아 아시아 주교들과 만났고, 해미 순교자 3위(인언민 마르티노, 이보현 프란치스코, 김진후 비오)의 시복 기념비 축복식을 주례했다. 오후에는 호야나무가 서 있는 해미읍성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도 주례했다.

해미순교자국제성지 전담 한광석(마리아 요셉) 신부는 “해미순교성지는 성지로는 드물게 생매장 순교 터와 묘가 함께 있는 곳으로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함께 묵상할 수 있다”며 “신앙공동체를 통해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체험으로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기쁘게 죽음을 받아들인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을 수 있는 성지를 순례하며 어려운 시대에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길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 미사 : 매일 오전 11시
※ 순례 문의 : 041-688-3183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