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어두컴컴한 밤길, 숙소를 찾다가 공사 중인 산길이 나오고 굴착기가 덩그러니 있기에 혼자 생각에 ‘새로 길을 내는 공사 중이네. 그럼 이 길이 아니구나’ 싶어 왔던 길로 돌아온 우리는 다른 길로 돌아 숙소를 찾았습니다. 이번 길은 마을로 들어가는 좁은 길이었는데, 집들은 불이 다 꺼져있고 낯선 차량에 개 짖는 소리만 여기저기 울렸습니다.
그렇게 가다가 순간, 남의 집 담과 담 사이 차 한 대 간신히 들어가는 길로 들어섰더니 길이 막혀 버렸고, 차는 그대로 후진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순간 후진을 잘못하면, 렌터카 회사차 양옆을 그대로 긁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타는 입술과 식은땀을 흘리며 아주 천천히 후진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차 뒷바퀴가 높게 솟은 돌부리에 걸리더니 헛바퀴만 돌았습니다. ‘아뿔싸! 아, 주님, 주님’ 심하게 헛바퀴가 돌고 타이어가 타는 냄새가 나더니 간신히 차를 후진할 수 있었고, 원래 왔던 곳으로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시련을 겪는 걸까? 음, 순례 중에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한 것이 있나.’
순례 책임자인 저는 일행분들을 최대한 안심시켜 드렸고, 마지막 남은 길이 하나 있기에 그 길을 선택한 후 천천히 차를 몰고 갔습니다. ‘이 길은 맞을 거야. 아니, 이 길이 맞아야 해. 그리고 주님, 순례를 하는 저희들을 제발 좀 지켜 주십시오.’
그렇게 차를 몰고 숙소를 찾아 길을 따라가는 도중 좁은 농로가 나왔습니다. 이 길로 가다 보면 되겠다 싶어 길을 따라 농로 끝까지 갔더니 논두렁이 나오면서 길이 다시 끊어져 버렸습니다. ‘아이, 또. 세 번씩이나! 이건 아닌데. 주님, 왜, 도대체 왜?’ 긴급히 차를 돌리려는데 바퀴 하나가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빠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남의 논으로 들어가 차를 돌리게 되었습니다. 정말 진땀을 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순례하는 분들 안심시키랴, 나 자신 스스로 정신 차리랴, 그 와중에 길을 잃은 상황에서 오는 불안함에 하느님 탓만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실례를 무릅쓰고 그 마을의 어느 집에 들어가 길을 여쭈었더니 그분은 맨 처음 우리가 가던 길을 좀 더 가면 그곳에 숙소가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공사 중인 그 길이었단 말인가.’
그분이 가르쳐준 길로 갔더니 개울이 아닌 다른 길이 나왔고, 맨 처음 ‘이 길이 아닌가?’ 싶어 차를 돌린 그곳에서 좀 더 올라갔더니 바로 거기에 우리를 반기는 불 켜진 빈 숙소가 나왔습니다.
‘이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이리저리 삶의 방향을 틀어놓고, 그러다 뭐가 잘 안되면 괜히 하느님이 주시는 시련이라 생각하면서 하느님 탓만을 했습니다. 살면서 내 생각대로 살아온 후, 결과가 내 뜻대로 나오지 않으면 하느님 시련이라고 은근히 하느님 탓만 했습니다.
늘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내 생각의 결과대로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시련을 내가 정해 버렸습니다. 하느님은 늘 있는 그 자체로 내 곁에 함께 계셨는데, 나는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은총과 시련’의 잣대로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때의 순례 길에서 부끄러운 내 신앙을 생생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