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50) 나를 믿어준 신부님 ①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08-12 수정일 2014-08-12 발행일 2014-08-17 제 2908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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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봐주신 신부님 때문에…
내가 아는 교구 신부님 중에는 일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신학교에 들어와서 신부님이 되신 분이 있습니다. 그 신부님은 평소 ‘한국교회의 미래는 젊은이들 손에 달려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사목하신 본당 마다 청년 활동에 대해서는 언제나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셨고, 청년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신부님은 함께 동행하거나, 필요한 도움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예전에 그 본당에 젊은이를 위한 특강을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강 후에 사제관에서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나는 짓궂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은 신학교에 갈 거면 진즉에 가지, 일반 대학은 왜 다니다 오셨어요? 신부님 때문에 당시 일반 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학생만 입학시험에 떨어졌을 거잖아요!”

본당 신부님은 “맞아, 맞아!”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강 신부, 사실 나는 처음부터 성소가 없었어. 영세도 군대에서 했지. 제대 후 복학을 하고, 평범한 대학 생활을 했어. 한 가지 달라진 것은 복학 후에도 성당에 다녔다는 사실이야. 성당에 가면 그냥 좋더라고. 그러다가 본당 청년회 활동을 하게 되었고, 내 주제에 본당 청년 회장까지 했지! 하하하. 본당 사정도 잘 모르는 내가 청년회 회장이 되니 괜히 내 신앙생활에 대한 보상이나 된 듯 마음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어. 그런데 본당 청년 활동이 내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그 후에 알게 되었지. 본당 사목회는 청년회들에 대해서 툭 하면 봉사를 강요했고, 청년들을 마치 본당 머슴처럼 생각할 때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했어. 그러다 청년 캠프를 준비할 때였지. 2박 3일 가는데, 나는 나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 그래서 시간 없다는 청년들 달래서 캠프 참가를 시키고, 장소 섭외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하다 보니 그만 예산이 넘어버렸어. 그래서 본당 사무실 가서 추가 지출서를 쓰려는데, 사목회에서 예산 안에서 무조건 쓰라고 결재가 안 나는 거야!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래서 씩씩거리며, 무작정 사제관에 가서 본당 신부님을 찾았지! 지금 생각하면 무식해서 용감했지. 그런데 평상복 차림인 신부님이 나오시더니 무슨 일이냐 묻더라. 그래서 흥분한 상태에 자초지종을 죄다 말씀드렸더니, 신부님은 나를 부드럽게 바라보시며 하시는 말씀이 “내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하시더라. 그런데 그 얼굴, 그 말씨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그리고 신부님은 “지금처럼 최선을 다하는 그 마음으로 계속 노력을 해 주세요. 그래도 또 모자라면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호주머니에 비록 많은 돈은 없지만, 나눌 돈은 있지요.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면 하느님 안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신부님은 내 마음, 내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주셨던 거야. 신앙도 깊지 않고, 서툴고 정리되지 않는 열정만 많은 나를 신부님은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보셨던 것 같아. 아마 그게 내가 사제가 되려는 성소의 첫 부르심이었지.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준 신부님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대학 졸업하고, 일반 직장에 1년 정도 다니면서 성소자 모임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그다음 해에 신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지.”

자신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찾아간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오랫동안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어준 신부님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사제의 길을 선택한 그 신부님은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