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10) 과소비를 섭리로 이끄신 하느님 (2)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11-17 수정일 2015-11-17 발행일 2015-11-22 제 297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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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원에서 어린 형제들과 함께 지내며 청빈의 덕을 몸소 보여주고자 열심히 살았던 경리 담당 수사님. 어느 날, 시장에서 2+1 기획 상품 소시지와 거기다 두 묶음을 사면 하나를 더 덤으로 준다는 광고 문구 앞에서 수사님은 순간 ‘절약’이라는 명분하에 몇 묶음을 왕창 사서 냉장고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간에 은인들로부터 반찬들을 선물로 받는 바람에 소시지 볶음이 밀려버렸습니다. 소시지는 그만 유통이 지나버렸고, 음식을 만들다 남겨 놓은 소시지마저 곰팡이가 핀 것입니다.

그래서 수사님은 상한 소시지들을 형제들 몰래 치우려고, 야외 냉장고에 담아 놓았고, 형제들에게는 근엄하게 야외 냉장고의 물건을 손대지 말라고 공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수사님 스스로는 살림 담당자로서 언제나 형제들에게 청빈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과소비로 인해 귀한 음식물을 버리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날 저녁, 방으로 돌아온 수사님은 형제들 앞에서 말로는 청빈을 강조하면서 ‘과소비’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반성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수사님 스스로는 신학원 형제들과 살면서 자신이 얼마나 청빈의 삶을 잘 사는 형제인지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했던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수사님은 늦은 밤 동안 많은 것을 묵상하며 기도 중에 잠이 들었습니다.

‘주님, 청빈의 덕은 어느 한순간 마음먹고 지킨다고 지켜지는 덕행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가 절약을 빙자한 과소비의 유혹 앞에서 주님의 선하심이 식별 기준이 되게 해 주소서.’

그 다음 날 새벽, 신학원 형제들이 성당으로 기도드리러 가고 아침 당번인 수사님은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김장 김치를 썰어 접시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물에 풀어 놓은 미역을 건져 참기름에 볶은 다음 미역국을 만들었고, 며칠 내내 들어온 반찬을 식탁에 놓았더니 그 날따라 크게 할 일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수사님은 시간도 남아서, 식당 밖으로 나와 야외 냉장고로 갔습니다. 그리고 형제들 몰래 소시지를 치우고자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앗! 없다. 소시지 봉지’

순간 당황한 수사님은 다시 한 번 찾아보았으나 상한 소시지를 싼 봉지째로 없어졌던 것입니다.

‘이런, 귀신이 곡할 노릇이 있나! 분명히 있었는데….’

그런데 기도와 미사가 아직 끝날 시간이 아닌데, 세 명의 신학원 형제들이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경리 담당 수사님은 형제들이 있는 화장실로 가서 물었습니다.

“아니, 기도하다 말고 왜 그래?”

그러자 화장실에서는 거대한 나팔 소리들이 들리고, 한 명은 안에서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형제가,

“어제 저녁을 먹고 체했나 봅니다. 우리 세 사람 다 속이 안 좋아서. 어, 어, 어!”

그리고 그 형제도 나왔던 화장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수사님은 곰곰이 생각해봐도, 어제 저녁에 체할 음식이 없었는데 왜들 저러지 하면서 혼자 걱정하면서, 형제들에게, “설사는 ○○○이 직방이야. 그래도 미사 전에는 들어가야지.”

암튼 그 수사님은 영문도 모른 채 설사약을 찾아다 주었고, 형제들 세 명은 화장실을 나와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면서 성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미사 중에도 한 형제가 화장실로 전력질주를 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