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12) 영화의 한 장면 (2)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12-01 수정일 2015-12-01 발행일 2015-12-06 제 2972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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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주제가 있는 순례’를 진행하면서 나 자신에게도 많은 경험과 묵상을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후반기 들어 함께 순례할 분들의 신청자가 적어지다 보니, ‘순례 프로그램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이번 달 순례를 시작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순례를 시작했고 비록 몇 분이 안 되지만 그분들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다시금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한 사람이라도 주제를 가지고 하는 이 순례에 참여하는 분이 계시다면, 묵묵히 이 길을 함께 걸어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대형 버스는 순례지에 도착했고, 나는 순례자들에게 ‘침묵 중에 각자가 머무르고 싶은 곳이 있다면 거기서 순교자의 음성을 들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안내를 전달했습니다. 순례지에 도착하기 전에 차 안에서 순례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해 드렸기에 순례자분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대로 순례의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함께 똑같이 순례자의 마음이 되어 순례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내가 먼저 천천히 느린 걸음을 걸으며, 그곳 순례지와 관련된 순교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성지는 교우촌과 순교자 무덤이 함께 있는 곳이라, 삶과 신앙 그리고 죽음을 함께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안개비가 자욱한 순례길을 천천히 그렇게 천천히 걸으며 ‘삶은 순교입니다. 순교는 사랑입니다’라는 말을 읊조렸습니다. 그렇게 걷는 데 어느 한 지점에서 나뿐만 아니라 함께 순례 간 사람들 모두가 그만 숨이 멎었습니다. 세상에!!

신앙의 선조들이 교우촌을 일구며 살던 곳 앞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노란 은행잎을 거의 다 떨어뜨렸는데, 휴…, 안개와 주변의 앙상한 나무, 그리고 수북이 쌓인 은행잎들과 그 옆에 있는 자그마한 의자 하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이 함께 순례하는 분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순간 모든 사람들이 꼭 같은 감탄사를 발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우와!”

이어서 함께 있는 모든 분들은 각자 가지고 온 스마트 폰으로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나도 몇 컷을 찍었는데, 그냥 누르기만 해도 작품 사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는 분들에게 문자로 그 사진을 보냈더니, ‘어느 작가의 작품 사진이냐’는 물음이 되돌아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마음 안으로 묵상 내용들이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순교자들 그리고 신앙의 선조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와 하루하루를 하느님께 맡기며 삶을 살았던 이들의 삶! 무엇이 그들을 그러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었을까! 비록 하느님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가장 불편한 삶을 힘들 때마다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그런데 뒤집어 묵상해 보니, 교우촌을 일구며 살았던 신자들뿐 아니라 하느님께서도 신앙의 선조들에게 자신들의 믿음을 잃지 않도록 영적인 위로를 주셨던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본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처럼,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하느님께서는 신앙의 선조들에게 보여 주었고 신앙의 선조들은 이러한 장면을 통해 하느님을 더욱더 찬미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연출하시는 영화의 한 장면을 통해 하느님을 찬미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문득 내가 앞으로 순례를 안 하겠다고 떼를 쓸까봐, 하느님은 친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우리가 그 안에서 묵상을 할 수 있도록 그날,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아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