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17) 케이크와 고추장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1-05 수정일 2016-01-05 발행일 2016-01-10 제 297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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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과 연말, 그리고 연초를 맞아 몸도 마음도 괜히 분주해집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이라 주변 분들과 감사인사나 희망의 마음을 나누면서도, 혹시나 빠트린 분은 없는지 신경이 꽤나 쓰기도 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아침 수도원에 케이크가 하나 배달 왔습니다. 그래서 경리 담당 신부님께 물었습니다.

“어, 이거 웬 케이크?”

그러자 경리 담당 신부님은

“네, 신부님 앞으로 온 케이크예요. 신부님이 책임 맡고 있는 봉사자분들께서 한 해를 기쁘게 맞이하시라고 우리에게 보내온 거래요.”

“그래? 우와, 맛있겠다. 우리 아침 식사 대신으로 먹을까?”

“좋아요!”

그렇게 우리는 아침 식탁에 케이크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되자 원장 신부님도 방에서 나왔고, 세 사람은 자연스레 독특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원래 원장 신부님은 아침 식사로 채소를 즐겨 먹습니다. 그래서 원장 신부님 자리에는 채소 접시가 있고, 우리 두 사람은 아침 식사로 케이크를 먹으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원장 신부님의 식사 전 기도가 끝난 후 식탁에 앉자마자, 정신없이 케이크 박스를 뜯었습니다. 그러자 생크림 케이크가 나왔습니다. 군침이 돋고, 마음속으로 ‘으히히히’ 하며 케이크를 잘랐습니다. 그런데 원장 신부님이 가만히 케이크를 보면서 뭔가 두리번거렸습니다. 이를 알아차린 경리 담당 신부님은 찻장 속에서 고추장 통을 꺼내 식탁 위에 놓았습니다.

그 고추장 통이 내 앞에 놓인 것을 보는 순간, ‘원장 신부님이 나더러 생크림 케이크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라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황한 나는 경리 담당 신부님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이게 웬 고추장! 설마 생크림 케이크에 고추장 비벼 먹으라고?”

그리고 2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확’ 스쳐 지나갔습니다. 첫 번째, ‘생크림 케이크를 아침부터 먹으면 내가 살이 찔까 봐, 원장 신부님이 내 건강 걱정에 케이크를 일부러 맛없게 먹으라는 뜻인가!’, 두 번째는 ‘원장 신부님이 아침, 저녁마다 살 빼야 한다, 살 빼야 한다고 하니까 경리 담당 신부님이 원장 신부님의 의중을 생각해서, 생크림 케이크를 고추장과 함께 먹게 함으로써 속이 니글니글 거려서 얼마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게 만들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까!’, 세 번째는….

그런데 경리 담당 신부님은 갑자기 배꼽을 잡으며 웃더니,

“푸하하하, 신부님. 생크림 케이크를 어떻게 고추장과 함께 먹을 수 있어요! 이 고추장은 원장 신부님이 채소 먹을 때 찍어 먹으라고 내놓은 거예요.”

사람의 생각은 스스로 잘 다스리지 않으면 상대방이 전혀 뜻하지도 않는데, 혼자 추측하고, 혼자 오해하고, 혼자 판단합니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한순간에도 수많은 생각을 양산해 냅니다. 특히 스트레스 상황이나 머리가 복잡할 때는 쉽게 넘겨짚거나, 앞질러 단정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서 혼자 당황하고, 혼자 마음으로 투덜거리고, 심지어 혼자 화내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생각을 잡는 방법 중에는 천천히 숨쉬기, 판단과 결정을 보류하기, 끝까지 사람 말을 경청하기 등이 있습니다. 때로는 숨 한번 크게 쉬면, 모든 일이 자연스러워질 텐데…. 연말, 연초,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야 혼자서 생크림 케이크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끔찍한 생각을 혼자서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