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살면서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따스한 위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몇 번이나 있으신지요? 아니면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언제나 사랑으로 돌보아 주고 계셨다는 사실을 확신한 적은 또 언제 있으셨는지요? 변하기 쉬운 인간적인 위로와 사랑이 아니라, 오로지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위로와 사랑을 믿을 때 거기서 나오는 영적인 힘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될 경우가 있습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분 중에 무척이나 긍정적인 자매님이 계십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자매님 정도의 험한 시련을 겪게 되면 대인 관계에 있어 위축되거나, 심할 경우에는 우울증을 동반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하지만 그 자매님은 그 큰 시련의 시간 앞에서도 언제나 밝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하는 일에 일손이 필요해서 그 자매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단순 노동의 작업을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끝내 주시던지! 며칠을 해야 할 작업을 하루 만에 다 끝낸 후 기쁨에 가득 찬 나는 자매님과 차를 나누면서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다 평소 자매님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여쭈었습니다.
“고마우신 자매님, 사실 자매님 삶을 생각하면 힘겹고 지칠 일이 많을 텐데 평소에 밝게,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는지 궁금한 적이 있었어요. 혹시 무슨 계기가 있으셨어요?”
두 손으로 따스한 컵을 감싸 안으시며 차를 한 모금씩 마시던 자매님은 환하게 웃으며,
“그렇죠. 궁금하시죠? 음, 그럼 제가 말씀드릴게요. 사실은 지금까지 ‘누군지 모르는 어느 신부님’ 때문에 이렇게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크게 보면,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때문에 이렇게 노력하며 살고 있답니다.”
“누군지 모르는 어느 신부님이라뇨?”
“사실 10년 전의 내 삶을 돌이켜보면, 힘든 일이 연속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어나 인간적인 불행이라는 불행은 다 겪고 있었어요. 정말이지, 그때는 정신을 못 차리게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날마다 하느님께 원망도 하고,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도 하고. 그러면서 왜 이렇게 나 혼자만 겪기 힘든 시련을 허락하셨는지 분노하고 증오하고 미워하고 원망했어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시간을 겪고 있었죠. 냉담 중이던 어느 날 우연히 혼자서 성당에 가게 됐고, 나도 모르게 성체 앞에 가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어요. 그런데 아마도 미사 전이었는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성당 안에 있는 고해소에 빨간 불이 들어오더라고요. 마치 나더러 지금 고해소에 들어오라는 듯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곳에 들어가서, 고해성사를 보는데 또다시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울면서, 세상에 대한 분노, 사람에 대한 미움과 증오, 가족들에 대한 원망, 내 삶에 대한 두려움 등 내 안에 있는 죄책감을 죄다 쏟아 냈어요.”
“그러셨구나. 그러면서 마음속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겠어요.”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성사를 보는데, 고해소 칸 넘어 신부님이 계신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가만히 들어보니, 글쎄 신부님이 내 고백을 듣고 우시는 거예요. 순간 화들짝 놀랐어요. 신부님이 우시는 것에.”
“고해소에 계신 신부님이 울어요?”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