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살아 있다는 것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10-12 수정일 2016-10-12 발행일 2016-10-16 제 301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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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조금은 듣기 민망한 이야기 중에 하나가 “강석진 신부는 참 복스럽게 먹는다”는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특히 어느 신자 분께선 내가 장가를 가면, 장인, 장모가 무척 좋아할 거랍니다. 내가 아무 음식이나 정말 맛있게, 복스럽게 잘 먹어서랍니다. 이렇게 놀라운 식성이지만 육지에서, 아니 서울에서 도저히 잘 못 먹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회입니다. 육지에서 아니, 서울에서 회를 먹으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사실 내가 육지에서 회를 안 먹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바다에 살아 갓 잡은 고기들을 그 자리에서 회로 먹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휴가 때 제주도 집에 가면, 동네 형님, 동생들과 방금 잡은 고기를 회로 떠서 부둣가 옆, 땅바닥에 앉아서 먹습니다. 그러면 시원한 바다 내음이 곁들여진 그 맛은 정말 일품입니다. 그 회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휴가 때면, 나는 아침, 저녁으로 동네 형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배를 타고 가다 보면, 어느 한 지점에 배가 멈추고, 그물을 쳐 놓은 곳에 도착합니다. 덤장이라고 하는 그물입니다. 바다 위에 매우 크고 넓고 무거운 그물을 쳐 놓았고, 6명이 한 팀이 되어 그물을 끌어올립니다.

힘겨운 그물 작업을 하다가, 거의 다 끌어올릴 때가 되면, 그물 끝자락에서 물고기들이 심한 요동을 치면서 파드득 파드득 뛰기 시작합니다. 물고기들이 잡힌 것입니다.

운 좋은 날은 엄청난 물고기들이 잡히기도 하지만, 날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허탕 친 날엔 배 기름 값도 안 나오지만, 어부인 동네 형들은 그것도 하늘의 뜻, 바다의 뜻이라면서 돌아옵니다.

아무튼 그렇게 물고기를 잡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분류입니다. 좋은 것들은 물고기를 살려두는 물칸에 담고, 그 밖의 것들은 배 한쪽으로 던지거나 바다로 다시 던져 살게 해줍니다. 그중 첫 번째는 값비싼 고기들 가운데 살아 있는 것들을 잘 살리는 일입니다. 그런 다음 그 달의 귀한 어종들을 따로 큰 통에 잘 분리해놓습니다. 죽은 고기들은 값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동료 어부들이 집으로 가져가 조림이나 해 먹으려고 따로 빼 놓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작은 물고기들은 바다로 돌려보냅니다.

어부들의 물고기 선별 작업을 보면서 묵상하게 되는 것은 바로 살아 있다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그 어떤 물고기든지 살아 있기만 하면 귀한 존재로 분류되듯이,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이 우리 삶을 분류할 때 살아 있기만 하면 귀한 존재로 분류됨을 깨닫게 됩니다. 지치고 힘든 세상, 어렵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고, 가족들의 불목과 불화가 우리 삶을 힘들게 할지라도, 살아봅시다. 진정 기도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믿고 살아간다면, 살아 있음으로 인해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