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60) 하느님이 만드신 우연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11-15 수정일 2016-11-16 발행일 2016-11-20 제 302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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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미사 때, 후배 신부님의 성모님 마음에 대한 강론에 이어, 나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하느님 품에 잠들어 계신 여러분의 어머님도 성모님 마음을 그대로 닮으셨고, 한 평생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셨습니다. … 지금의 여러분 모두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말없이 헌신한 분, 바로 그 분이 여러분의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님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어머니를 하느님 품에 맡겨 드려 이제 고통도, 슬픔도, 눈물도 없는 곳에서 영원히 쉴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순간, 신자가 아닌 맏상주되는 큰 아들이 먼저 펑펑 우셨고, 이어서 유가족들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미사에 참례한 다른 분들도 돌아가신 분의 영정 사진 속 환한 얼굴을 쳐다보며 훌쩍거렸습니다. 암튼 눈물겨운 미사를 봉헌하는데, 내 기억 속에서 보면 장례식장에서 미사를 봉헌한 것 중에 가장 따스한 미사를 봉헌한 것 같았습니다.

미사를 마치자 유가족 한 분, 한 분이 함께 미사를 봉헌한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우리 어머니, 정말 착한 분이셨고, 너무 좋은 분이셨습니다’ 등등의 말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유가족 분들과 인사를 나눈 후, 후배 신부님에게 물었습니다.

“갑자기 강론 시켜서 놀랬지? 그런데 그 상황에서 어떻게 성모님 강론을 하게 되었어?”

“영정 사진을 보니, 돌아가신 고인이 성모님을 많이많이 사랑하신 분 같아서 그냥 성모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강론을 하게 되었어요.”

서울로 올라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후배 신부님이 내 방에 왜 왔을까! 그래서 장례미사 강론도 하고!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그런데 함께 올라오는 일행 중에 한 분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신부님, 어머니를 하느님 품에 보낸 우리 율리안나가 저에게,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울면서 너무 좋아했어요.”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율리안나가 3년 동안 매일 같이 하느님께 기도를 했대요. 아픈 어머니가 고통없이 돌아가게 해 주시고, 장례는 천주교식으로 하면 좋겠다고, 그리고 냉담하는 가족들은 냉담을 풀게 해달라고.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어 주셨다고, 울면서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럼 그렇지. 하느님이 다 계획하고 준비하신 것이었구나. 후배 신부님이 내 방에 찾아온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렇게 되도록 이끄셨구나. 그리고 장례미사에 오게 하신 것도,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장례미사 강론을 시킨 것도, 그리고 성모님 강론을 한 것도, 다 하느님 뜻이었구나. 그럼, 그렇지. 하느님이 하셨구나.’

차창 밖으로 가을 단풍이 물드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인간의 간절한 기도에 하느님은 언제나 사랑으로 물들어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은 역시, 결국은… 사랑이셨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