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70) 복수는 덧 없는 것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1-31 수정일 2017-02-01 발행일 2017-02-05 제 303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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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일과는 19시 30분 끝기도를 바친 후 마무리 됩니다. 어느 날, 끝기도 후 각자 방으로 돌아가는데 수도원 3층 복도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큰일이 일어난 줄 알고, 나를 비롯해 형제들은 수도원 3층 복도로 뛰어갔는데….

끝기도를 마친 L형제가 불 꺼진 O형제의 방에 몰래 숨어 들어갔던 것입니다. L형제는 O형제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O형제는 끝기도의 감동을 안고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는 순간! 시꺼먼 수도복을 쓰고 있는 L형제가 ‘확!’ 하며 소리 내자, 순간 O형제는 기절할 정도로 놀라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형제들끼리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형제들은 모두 웃으며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당사자 O형제에게는 결코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L형제에게 그대로 되갚아 주리라. 온전히 되갚아 주리라.’

그 후 며칠이 흘러 모두들 그 날의 사건은 잊고, 아무 일도 없는 듯 끝기도를 마친 시간. ‘거사’를 준비한 O형제는 L형제의 방에 랜턴까지 들고 들어갔습니다. L형제가 문을 열 때, O형제는 랜턴을 켜서 턱에서 얼굴 쪽으로 비춰 섬뜩한 모습을 연출하려 했던 것입니다.

‘L형제여, 어서 오라.’

L형제와 O형제는 끝기도를 함께 바쳤기에, L형제 역시 방으로 곧 들어올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계획된 시간이 1분, 5분, 그리고 10분이 흘러도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O형제는 속으로, ‘L형제가 알아차린 것일까! 아냐, 전혀 몰라. 완벽해!’

하지만 자기 방도 아니라, 불이 꺼진 다른 형제의 방에 혼자 있는 것이 심심해졌습니다. 간혹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면, L형제가 온 줄 알고 다시 랜턴을 얼굴에 켜놓을 준비를 했지만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복수의 시간이 벌써 30분이 지나자, O형제는 피곤해졌습니다. 서서 기다리던 O형제는 L형제의 방구석에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1시간 정도가 지나자 서서히…. 수도복을 입은 채, 손에는 랜턴을 들고 L형제의 방바닥에서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그 시각, L형제는 어느 본당 특강을 준비하기 위해 수도원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있었습니다.

L형제는 2시간이나 지나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불을 켜고 방바닥에서 콧물을 흘리며 잠들어 있는 O형제를 발견했습니다. 순간 L형제는, “수사님, 아침 식사 하셔야죠? 오늘은 아침 기도랑 미사에도 안 나오고!”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화들짝 놀란 O형제는 벌떡 일어나 ‘아이고, 아이고….’ 그리고 O형제는 또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풀이 죽은 채, 자기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날 O형제는 시간도 허비했고, 바닥에 누워 조느라 콧물을 흘리며 감기만 얻었습니다. 그 후 O형제의 첫 마디!

“복수는 힘든 거네요. 복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요. 복수할 기운이 있으면 기도나 해야겠어요.”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