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72) 아이패드와 핫팩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2-14 수정일 2017-02-14 발행일 2017-02-19 제 3032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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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선교를 하던 신부님이 한국에 다니러 왔는데, 앞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동안 일기를 꾸준히 쓰기로 다짐을 했답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한국에 온 김에 예전에 잘 쓰던 아이패드를 다시 찾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아이패드를 넣어둔 박스를 사촌 누나네 집에 맡겨 놓았던 것이 생각난 그 신부님은 종합 검진을 받는 동안 사촌 누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며칠 뒤에 온다던 사촌 누나는 그날 저녁에 바로 신부님에게 전화를 걸어, 그 신부님과 만날 시간을 잡아 숙소를 찾아갔답니다. 1시간 넘는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친구분이랑 함께 왔답니다. 오랜만에 만난 신부님과 사촌 누나는 무척이나 반가운 인사를 나눴고, 사촌 누나는 정성스럽게 가지고 온 종이 가방을 전달했습니다. 종이 가방을 받은 신부님은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종이 가방 속에는 아이패드가 아니라 핫팩이 있었습니다. 핫.팩!

숙소 앞 대문에서 모두가 멍 – 했습니다. 그 신부님은 우선 아이패드가 아니라 핫팩이라 당황했고, 1시간이 훨씬 넘는 거리를 핫팩을 가지고 온 사촌 누나에게 미안했고,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나도 추워서 함께 온 친구분에게도 너무 죄송스러웠답니다.

“누나, 가지고 온 것이 아이패드가 아니라 핫팩이네요. 어쩌죠? 저는 아이패드를 찾는데.”

“어, 전화로 핫팩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내가 확인 문자도 보냈는데!”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습니다. 그 신부님은 건강 검진받느라 사촌 누나에게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더니, 사촌 누나는 신부님이 무척 아픈 줄 알았답니다. 그래서 아이패드라는 말이 핫팩으로 들렸답니다. 그리고 사촌 누나 역시, 신부님에게 ‘핫팩’을 찾았다는 문자를 보내면서, ‘핫팻’이라고 써서 보냈답니다. ‘핫팩’이 아니라 ‘핫팻’. 오타가 났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신부님도 요즘 한국에서 긴 낱말이나 문장을 짧게 줄여서 부르는 것이 유행이라 아이패드를 줄여서 ‘핫팻’이라고 말하는 줄 알았답니다. 그래서 사촌 누나로부터 ‘핫팻 찾았어요!’라고 문자가 오니까, 신부님은 혼자 스스로 ‘아이패드를 줄여서 핫팻’이라 부르는 줄 알고 사촌 누나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또한 그날따라 사촌 누나도 신부님이 전화하던 그 시간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보고 있었기에, 조금은 예쁜 얼굴로 신부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더 이상 묻지도 않고 핫팩을 찾아 들고, 신부님에게 갔던 것입니다.

그날 모두가 다 고생했고, 그 신부님 역시 오묘한 체험을 했답니다. 그리고 그 신부님은 결심하기를 혼자 넘·겨·짚·어 생각하지 말고, 아는 길도 물어보고,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삶을 살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 일기는 언제 쓰고, 길은 언제 묻고, 돌다리는 언제 두드리고…. 그래도 신부님, 화이팅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