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73) 예, 여기 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2-21 수정일 2017-02-22 발행일 2017-02-26 제 303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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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도원에서 대착복 예절과 첫 서원식이 있었습니다. 신자 분들은 종신서원식은 알지만, 대착복 예절이나 첫 서원식은 모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예식에는 해당 수사님들의 가족들만 단출하게 초대하기 때문입니다. 대착복 예절을 통해 처음으로 수도복을 받고 수련기에 들어가고자 결심하는 형제들의 마음, 긴 수련기를 마치고 처음으로 ‘정결·청빈·순명’의 삶을 살겠다고 하느님께 처음으로 약속하는 수사님들에게는 이 순간이 가장 설레는 때입니다.

대착복과 첫서원을 하는 수사님들의 가까운 가족들만 초대했는데도 수도원 성당은 수사님들의 가족들로 가득 찼습니다. 주변을 돌아다보니, 형제들보다 더 긴장되고, 상기된 모습의 부모님이 두 손을 모으고 있고, 대착복과 첫서원을 하는 형제들과는 가족 관계가 되는 젊은 분들과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강론이 끝나자 예식이 시작됐습니다. 총원장 신부님께서는 제대 가운데로 오시고, 지·청원자 담당 수사님과 수련장 수사님께서는 해설 수사님의 멘트에 따라 대착복과 첫서원을 하는 형제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부릅니다.

“대착복을 하는 형제들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000 형제.”

“예, 여기 있습니다.”

나는 제대 앞으로 걸어 나오는 형제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떨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뒤에서 어린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어디 있다는 거야!”

그러자 아이 엄마가 놀랐는지, 아이의 입을 얼른 틀어막은 모양입니다. 잠잠한 상태가 이어지고, 또다시 형제들의 이름이 호명됩니다.

“000 형제.”

“예, 여기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엄마가 아이의 입을 꾹 – 막고 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린 김에, 아이에게 윙-크를 했더니, 그 아이도 눈을 찡끗합니다. 엄마에게도 눈인사를 했더니, 그 엄마도 이제 안심이라 생각해서, 아이의 입에서 손을 뗍니다. 계속해서 형제들의 이름이 호명됩니다.

“000 형제.”

그러자 이번에는 더 큰 소리로,

“엄마, 어디에 있는데. 엄마 어디에 있냐고.”

아이는 삼촌의 이름이 호명되니, 좋아서 말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봤는데 작아서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절묘했던 것입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데.’ 나는 그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오늘 예절을 통해 하느님이 나에게 주는 묵상거리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부르실 때마다, 나는 언제나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은 했지만, 진심으로 내 본 마음이 ‘지금, 여기에 온전히 하느님과 있는가!’ 하는 것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저 말로만 하느님과 있다고 하는지, 아니면 삶으로 하느님 현존을 드러내며 사는지! 그날, 아이는 나에게 큰 울림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