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74) 부케와 즐거운 상상하기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2-27 수정일 2017-02-28 발행일 2017-03-05 제 303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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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어느 수녀원에 새벽미사를 봉헌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수녀원엔 상주하는 사제가 없어 평소에는 우리 수녀님들께서 우리 수도원 미사시간에 맞춰 오십니다. 그런데 수녀원에는 연세가 무척 많으신 할머니 수녀님 한 분이 계십니다. 수녀원은 경사가 높은 언덕에 자리한데다 겨울엔 길 군데군데가 얼어 할머니 수녀님은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 길을 걸으시기가 매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수녀원에서는 한 달 동안만 수녀원에서 미사를 드려주실 신부님을 보내 달라고 요청을 했고, 내가 뽑혔습니다.

이윽고 약속한 한 달이 지나 마지막 미사를 끝내고 수녀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오는데, 할머니 수녀님께서 꽃다발을 하나 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인조 꽃으로 된 작고 하얀 꽃다발이었습니다. 꽃다발 안에는 사탕도 꽂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1970년대 시골에서 결혼식 때 신부들이 가지고 있던 모양의 부케였습니다. 처음엔 인사하느라 잘 몰랐는데, 수녀원 대문을 나서서 하얀색의 울긋불긋한 부케를 들고 거리를 걷는데 왠지 모를 부끄러움 같은 것이 밀려왔습니다. ‘신부’에게 어울리는 부케가 나 같은 ‘신부’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성스레 만든 부케 꽃다발이라 어찌할 수도 없고! 입고 있는 잠바 속에 넣고 지퍼를 올릴까 했는데 나온 배가 더 나와 보일 것 같아서 손에 들고 계속 길을 걷는데…. 아이쿠! 버스정류소 앞을 지나려는데 그날따라 왜 그리도 사람들이 많은지! 순간 사람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부케를 손에 들고 다니는 나를 쳐다보고 속으로 한 마디씩 하는 이상한 상상을 하는 듯했습니다.

‘저 사람 좀 이상한 거 아냐! 추운 겨울 아침부터 부케를 들고 돌아다니네. 아냐, 아침부터 부케를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딱한 사정이 있겠지. 집 나간 배우자를 찾아 방황을 한다든지….’

내가 만든 부정적인 상상은 내 마음을 더 어색하고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해 봅니다. 즐거운 상상하기 – 시작!

‘가만 보자, 이 부케는 할머니 수녀님이 만드셨을 테고, 그 할머니 수녀님에게 1970년대는 인생의 황금기였겠지. 그래서 수녀님은 그 당시에 자신이 본 가장 아름다운 색감을 가지고 손수 꽃다발을 만들어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을 했던 거야! 아, 마음이 따스해지네.’

그렇습니다. ‘즐거운 상상하기’를 시작하면서 내 온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작고 아담한 흰색 부케가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평생을 수도자로서 살아온 수녀님의 마음을 닮은 부케에서 장미꽃 향긋한 냄새가 나는 듯했습니다. 비록 겨울 아침, 부케 꽃다발을 들고 거리를 걷는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을 테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가 만든 ‘즐거운 상상하기’가 때로는 나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계기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