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75) 가짜 미사, 진짜 신자 (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3-07 수정일 2017-03-08 발행일 2017-03-12 제 303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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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수도원으로 개인 피정을 갔을 때, 거기서 연세 지긋하진 신부님과 환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화 중에 나는 신부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신부님, 요즘은 개인적으로는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미사 드릴 때 힘이 좀 들어요. 거의 20년 동안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사제의 축성으로 봉헌된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는 것은 확실히 믿어요. 그런데 때로는 빵과 포도주를 축성한 순간, 사제인 제가 온전히 정신 집중을 다하지 못하고, 뭐랄까 정신줄을 놓고 미사를 드릴 때가 있어요. 쉽게 말해서 축성 기도를 하는 그 순간에도 머릿속으로 분심이 드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미사 후에는 ‘내가 오늘 미사를 제대로 봉헌은 했나’ 뭐, 그런 생각이 들어 후회하고 그래요.”

그러자 그 신부님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강 신부님, 다른 사람에게는 해 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하나 할게요. 이 이야기는 혹시 가톨릭신문에 안 실을 거죠?”

“에이, 저…. 안 실어요.”

신부님과 철저히 비밀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께서 이걸 읽으시면…. ‘또 속았구나!’ 하시겠지요. 죄송합니다.

“저는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한 조각이 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복사를 처음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나는 미사 때마다 늘 덜덜덜 떨었어요. 그러면서도 신부님 옆에 서서 신부님이 미사 드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 무척 궁금했던 것이 있었어요. 그건 신부님 혼자서 ‘받아 먹어라, 받아 마시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동그랗고 흰색의 과자 같은 것을 들면 예수님의 몸이 되고,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면 예수님의 피가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신부님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사람들은 받을 때마다 ‘아멘’이라고 대답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도대체 내가 복사인데, 혹시 미사 중에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래서 하루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저녁에 우리 집 다락방에서 뭔가를 준비했어요.”

“뭘 준비하셨는데요?”

“이 이야기 누가 들으면, 독성죄라고 할 텐데, 하하하. 우선 부엌에 있는 작은 밥상을 다락방으로 가지고 온 다음, 거기에 세수수건을 펼쳐 놓고, 성경책과 노란색 밥그릇, 맥주잔을 올려놓은 후, 뻥튀기 같은 동그란 과자랑 간장, 그리고 물 등을 놓았어요. 그리고 어머니를 다락방으로 올라오라고 불렀고, 내가 성경책을 펴서 중얼거리면 어머니는 내 옆에서 ‘아멘’, ‘아멘’하고 응답하시고….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그럼 혹시, 신부님 어릴 때 다락방에서 미사를 드린 거예요?”

“예, 맞아요. 저는 그날, 미사 아닌 가짜 미사를 드린 거지요. 특히 주님의 기도를 바친 후에 과자가 담긴 밥그릇과 간장에 물을 섞어 놓은 맥주잔에 십자가 모양을 그었지요. 그렇게 하면 과자와 간장이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되는 줄 알았던 거예요.”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