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76) 가짜 미사, 진짜 신자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3-14 수정일 2017-03-15 발행일 2017-03-19 제 303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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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은 어릴 때 본당 신부님이 미사 드리는 것을 보고, 당신 집 다락방에서 나름 기억나는 대로 흉내를 냈던 것입니다.

“푸하하하, 다른 건 몰라도 신부님은 어릴 때부터 신부님이 되실 운명이었네요.”

“어릴 때 미사 드리는 흉내 한 번 낸 것이…. 후휴…. 이렇게 평생 미사를 드리며 살게 될 줄이야.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었지요. 그건 미사 드리는 흉내를 낸 내 자신이 아니라, 그런 나의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봐 주신 어머니의 마음이었어요.

사실, 어머니는 다 알고 계셨겠지요, 내가 대단히 엉뚱한 짓을 한다는 걸. 그런데도 어머니는 내가 주는 과자랑 간장 물을 ‘아멘’이라고 말하며 정성스럽게 드시는 거예요. 그 순간, 미사는 분명 가짜인데, 신자는 진짜였던 거예요. ‘아멘’하시던 어머니의 표정은 미사 때 표정과 같았지요. 어머니는 아들이 하는 짓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이 주는 과자랑 간장 물을 보면서, 아들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를 알고 있었던 그 마음을 온전히 따라 준 거지요. 그리고 아들이 미사를 흉내 내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그래서 어머니는 가짜 미사에 진짜 신자 역할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잊혀지지 않아요, 어머니의 그 마음과 그 사랑이. 우리가 드리는 미사 역시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 희생 제사를 기념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정말 온 마음을 다해 미사를 드렸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아야겠지요.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잖아요. 그저 사제들이 귀하고 소중해서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며 미사를 드리든지 간에, 무상으로 은총을 주셔서 결국 신자들이 받아먹는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나누어 주시잖아요. 그래요 우리는 그저 감사의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기만 하면, 하느님은 우리뿐 아니라 그 미사에서 진심을 다해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시고 놀라운 신비의 은총을 이루어 주시는 것 같아요. 진짜 신자인 어머니도 가짜 미사를 드리는 아들을 사랑으로 바라보시는데, 하물며 하느님이야 오죽하시겠어요.”

이 글을 쓰면서 조용히 눈을 감아봅니다. 그리고 내일 새벽이 되면 수도복을 정갈히 입고, 성당에 들어갈 생각을 해 봅니다. 형제들과 아침 성무일도를 바치고, 묵상을 하고. 그리고 미사 시간이 다가오면 제의방으로 가서 천천히 제의를 입겠지요. 제의를 입은 후 눈을 감고 긴 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져 보기도 하겠지요. 그러다 때가 되면 미사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그러면 또다시 진짜 신자들과 진짜 미사를 드리겠지요.

‘하느님 아버지, 이 미사를 드리는 동안 저의 온 마음이 당신 아들 예수를 그대로 닮으려 노력하는 가난하고 겸손한 사제가 되게 해 주소서.’

진짜 신자인 형제들과 진짜 미사를 봉헌하면서, 그날 하루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하루, 구체적으로 좀 더 온화하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 보겠다고 다짐하겠지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말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