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79) 어느 수사님의 드라마 중독 탈출기(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4-04 수정일 2017-04-05 발행일 2017-04-09 제 3039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평소 친하게 지내는 어느 수도회 수사님이 계신데, 그 수사님의 취미는 ‘영화 보기’, ‘미술 감상’, ‘클래식 음악 듣기’ 등입니다. 수사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유독 TV 드라마 내용이나 탤런트의 이름은 전혀 모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그 수사님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혹시 수사님네 수도원에는 TV가 있나요? 공동체 형제들이 모이는 시간에는 스포츠나 오락 프로그램을 보거나 그러지는 않나요?”

“에이, TV 없는 수도원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수사님은 TV를 안 보는 것 같아요.”

“나는 TV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이 없어서 잘 안 보기는 해요.”

“가끔은 TV 드라마 등이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피정 강의 중에 분위기가 가라앉거나 혹은 점심식사 후 오후 강의 때 졸릴 때면 관심을 끄는 이야기로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 줄거리나 멋진 탤런트 이야기를 하면 좋은데….”

“사실 고백하는데, 사람들 중에는 술이나 담배를 끊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나도 TV, 특히 드라마 보는 것을 끊었답니다.”

“네에? 드라마를 끊어요? 혹시 드라마 중독이었나요?”

“아니, 뭐 중독이라고까지는 할 건 없고….”

갑자기 우물쭈물하는 그 수사님의 모습을 보니 궁금증이 밀려왔습니다. 수사님에게 진지하게 한 번 더 물었습니다.

“에이, 우리 서로 같은 길을 걷는 ‘동업자’끼리 무슨 비밀이 있어요? 말 좀 해보세요.”

“허, 그게. 음…. 예전 그때가 아마 1993년인가 그럴 거예요. 당시 저는 수련기 과정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하루는 평일에,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형제가 수련소를 방문했어요. 그래서 수련소에선 휴가 나온 형제를 위해 간단한 공동체 회식시간이 마련됐거든요. 당연히 그때 최고의 시청각 효과는 TV였죠. 수련소에서는 주일 저녁 시간에만 형제들이 함께 모여 TV를 볼 수 있었기에, 평일에 TV를 보는 일은 매우 드물었어요. 그런데 그 날, 동료 수련자 형제들과 함께 본 것이 ‘마지막 승부’인가 하는 농구 드라마였는데, 아무튼 그 드라마 남자 배우뿐 아니라 여자 배우가 무척 미인이었던 기억이 있어요.”

“아, 그 드라마는 저도 기억나요. 당시, 장안에 화제가 된 걸로 아는데요. 주제곡의 앞부분도 기억이 나는데요….”

“맞아요. 그날 처음 형제들과 드라마를 본 것뿐인데, 묘하게도 그다음 날 내 머릿속에서는 그 드라마의 후속편을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 드라마는 월·화요일에 하는데, 그다음 날부터 그다음 주 월요일까지 나 혼자 드라마 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글쎄.”

“수련소에서는 평일에 TV를 못 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드라마를 볼 수 있었죠?”

“그게 신비였지요, 신비.”

(다음 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