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80) 어느 수사님의 드라마 중독 탈출기(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4-11 수정일 2017-04-19 발행일 2017-04-16 제 304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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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수련장 수사님 몰래 본 거예요?”

“사실 나는 그 드라마를 몰래 딱 한 번만 보려고만 했어요. 그래서 월요일 밤 10시 즈음, 수련소 공동방에 몰래 들어가 불을 끄고 빛이 밖으로 새어 나갈까봐 TV를 이불로 덮은 다음 그 드라마를 봤어요. 딱 한 번만 보려고 했는데, 그 날도 마지막 부분이 아슬아슬하게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화요일,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과 화요일, 또 그 다음 주…. 그렇게 계속 몰래 본 거예요. 그런데 그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하는 날이 하필, 수련기를 마치고 첫 서원을 준비하기 위해 서원 피정을 하는 날인 거예요. 첫 서원 피정은 본원으로 올라가서 원장 신부님께 지도를 받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원 피정 보다 ‘어떻게 하면 그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볼 수 있을까’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정말 우리 수도자에게 첫 서원 피정이 중요한데, 그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신 거예요?”

수사님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그 날, 놀라운 일이 있었어요. 피정 시작 전에 방 배정을 받은 후, 본원에 사시는 할아버지 수사님들께 인사를 드릴 때였어요. 할아버지 수사님 중 한 분이 TV 주파수가 잡히는 라디오를 갖고 계시더라고요. 그분은 시력이 나빠 가끔 TV 뉴스를 라디오로 들으신다는 거예요. 그 날 저녁, 할아버지 수사님께 ‘혹시 오늘 하룻밤만 라디오를 빌릴 수 없냐고’ 말씀드렸더니, 기꺼이 가져가라는 거예요. 난 피정의 기쁨보다는 드라마 마지막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수사님께 감사 인사를 몇 번씩이나 드리고 난 후에 라디오를 갖고 나왔지요. 그리고 대침묵 피정이 시작됐어요. 묵주기도와 끝기도, 피정 시작 강의를 듣고 방으로 돌아온 밤 10시 즈음, 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드라마를 듣기 위해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죠. 그런데 아무리 해도 주파수가 안 잡히는 거예요. 아뿔싸. 할아버지 수사님 방에서 그 라디오의 전용 안테나도 가져 왔어야 하는 거였어요. 아무튼 그렇게 30분을 혼자 라디오를 작동시켜 보다가 순간,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드라마에 빠져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내 귀한 수도 생활시간을, 물을 쉽게 낭비하듯 그렇게 낭비하고 있었는지! 그 순간 깨달은 거였어요. 그날 밤 내 가슴에 내 손을 대고, 결심했지요. 다시는 TV를 내 손으로 켜지 않는다고. 드라마는 절대로 보지 않겠다고. 그걸 지금까지 23년간 지켜온 것뿐이에요.”

수사님의 말을 들으며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오로지 하느님께만 마음을 두며 살아가는 시기를 보내는 사람에게는, 사소하게 생각한 유혹 하나가 때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거대한 돌덩이가 되어 자신의 삶 위로 덮치듯 굴러올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건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유혹과 호기심 하나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큰 암석이 되어 우리 삶을 덮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건강한 절제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절제력이 때로는 유혹과 호기심을 잘 정리해 주기 때문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