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는 찬미가’ 울려퍼질 하느님의 집 활짝 열리다 준본당에서 본당으로 승격 모든 청각장애 신자들 염원 많은 이들 관심과 후원으로 8년 만에 기적처럼 꿈 이뤄 대형 전광판·계단식 구조 등 청각장애인 위한 배려 돋보여 “장애인-비장애인 함께 만나 벽 허물 수 있는 공간 되길”
■ 꿈은 이루어진다
8년 만에 청각장애 신자들의 꿈이 이뤄졌다. 서울 마장동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에파타본당(주임 박민서 신부)의 새 성당이 서울대교구 최초로 건립됐다. 아시아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 박민서 신부가 직접 발로 뛴 지 8년 만이다.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마르 7,34) 성당 건립 과정은 말 더듬는 이를 고친 장면을 묘사한 성경 구절처럼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새 성당 신축은 박민서 신부를 비롯해 모든 청각장애 신자들의 꿈이었다. 그동안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는 서울 수유동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건물을 빌려 미사를 드려 왔다. 그러나 150명 정도밖에 수용할 수 없었다. 또 앞 사람이 일어서면 뒷사람이 수화를 볼 수 없어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성당 신축에 대한 주변의 시선 또한 차가웠다. 비장애 신자들이 돈을 모아 성당을 짓는 것도 어려운데 청각장애 신자들의 돈을 모아 성당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 섞인 반응에 박 신부는 오랜 꿈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때 박 신부의 마음을 돌린 건 수표 1장이었다. 그의 사정을 알게 된 한 신자가 3억 원짜리 수표 1장을 건넸다. 이 때부터 ‘이렇게 나의 꿈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성당 신축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박 신부는 2011년부터 서울대교구는 물론 지방 교구와 해외 한인본당 150여 곳을 찾아가 수화로 후원 미사를 봉헌하며 신자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본당 주임신부들도 ‘과연 수화로 미사가 가능할까’ 하는 걱정을 내비쳤다. 하지만 박 신부가 음성 통역 봉사자와 함께 수화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본 많은 신부들이 생각을 바꿔 주일미사를 맡겼다. 신자들은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그의 미사에서 하느님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후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적처럼 새 성당 건립기금 전액을 마련했다. 신자들의 크고 작은 정성이 모여 성당이 완공된 것이다. 박 신부에게 소감을 묻자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인 ‘고진감래’(苦盡甘來)가 떠오른다고 했다. “제 꿈을 무사히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후원 미사를 다니면서 성당 건립 기금도 중요했지만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우리 모두의 성당’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나 벽을 허물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 하느님을 찬미하는 또 하나의 언어, 수화 에파타본당 새 성당은 2017년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담당 박민서 신부) 60주년을 맞아 첫 삽을 뜬 지 2년 만에 건립됐다. 아울러 8월 25일부로 ‘에파타준본당’이 ‘본당’으로 승격했다. 1957년 서울 돈암동본당에 농아부가 처음 만들어진 지 62년 만이다. 이제 청각장애인들도 언제나 편안하게 들어와 기도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성당은 대지 약 886㎡(약 268평)에 지하 2층, 지상 6층, 연면적 약 2405㎡(약 727평) 규모로 대성전과 소성전, 언어청각치료실, 작은 피정의 집 등을 갖췄다. 특히 청각장애인을 위한 성당인 만큼 성당 안팎의 세심한 시각장치가 눈에 띈다. 대성전은 300석 규모로 어디서든 수화가 잘 보일 수 있게 계단식으로 지어졌다. 또 중간에 기둥이 없고 가로 3m, 세로 1.8m의 대형 LED 전광판을 설치해 주례 사제의 수화와 자막을 볼 수 있다. 대성전 출입문은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해 집 모양의 부조가 새겨졌고 고해소 앞에는 기도하는 사람과 양팔을 벌린 예수님이 그려졌다. 제대 벽면 대형 십자가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된 작품을 걸었다. 성당 외부 벽면에는 박 신부의 자필(自筆)이 새겨졌다. 평소 서예가 취미인 박 신부에게 설계자가 제안해 성사됐다. 그는 한 달에 걸쳐 요한복음 6장의 600자를 직접 썼다. 성경 말씀의 끝에는 박 신부의 호(號)인 ‘수우’(守愚)가 자리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스스로를 ‘바보’라고 한 것처럼 추기경을 본받는 사제가 되라며 그의 서예 스승이 ‘지킬 수, 어리석을 우’자를 써 지어줬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